어릴 적부터 집을 나서면, 많은 사람들에게 듣는 단어이다. 첫째도 딸, 둘째도 딸, 셋째도 딸인 집에서 우린 참 시끄럽게 자랐다. 좋은 말로 하자면 외로울 틈이 없었고, 나쁜 말로 하자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나이 터울도 적어 우리는 초, 중, 고등학교를 항상 함께 다녔고, 교복을 물려 입을 수조차 없어 돈은 말 그대로 곱하기 3이 들었다.
어릴 적 우린 단 한 번도 '나'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이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본가에 내려온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가 된다. 첫째와 막내는 그나마 자취생 시절, 혼자 산 적이 있지만 난 그조차도 해당되지 않았다. 룸메이트가 항상 있었다.
어쨌든 그중에서 난 둘째로 가장 독립적이고 꼼꼼하며 가족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알아서 잘하는 딸로 성장 중이다. 첫째는 엄마바라기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 품에만 있으려 했고, 어릴 적 사진을 보면 항상 엄마 옆엔 첫째가 있었다. 굉장히 세심하며 여린 성격의 소유자다. 셋째는 딱 막내다.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막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이미지 그대로다. 애교가 많지만 고집도 세고 자기중심적이다.
전쟁도 많이 치렀다. 머리 뜯고 싸우고, 베개를 서로에게 던지고 곰인형도 터트렸다. 인형과 함께 날아간 솜은 치워도 치워도 계속 나타나 일주일 간의 지옥도 맛보았다. 물론, 셋이었기에 우린 함께 숨바꼭질도 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으며 한복을 꺼내 입어 사극 연기까지 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주연배우와 조연배우를 넘나들며 연기에 몰두한 실력파 배우였다.
6년 간 떨어져 지냈던 딸들이 다시 모였다. 딸부잣집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6년의 시간 동안 우린 컸으며 달라졌다. 즉 자아와 개성이 너무 강해졌다.
엄마는 일을 하러 갔기에 우리가 살림을 맡아야 했는데, 떨어진 6년 동안 우린 서로 다른 생활습관들을 쌓아 왔고 맞춰 나가기 힘들었다.
예를 들면, 난 수저통에 수저를 놓을 때 숟가락과 젓가락의 입에 대는 부분을 아래로 넣어두는 타입인데, 셋째는 위로 넣어두는 타입이었다. 설거지거리를 설거지통에 넣어 둘 때, 난 한 번 뜨거운 물로 헹궈서 넣는 타입이면, 첫째는 물에 담가두는 타입이었다.
서로 거슬리긴 했지만 입으로 이 거슬림을 표출하진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룰이었다.
그러다
"언니, 수저 좀 저렇게 넣지 마!"
라고 싸움의 신호탄을 울리면, 전쟁이 시작되었다. 너는 왜 저렇게 하니, 나는 저렇게 한다, 네가 이렇게 하는 건 난 참았다, 너도 참아라 등등
그리고 특히 강아지의 분리불안으로 우리 중 1명은 항상 집에 상주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날은 미리 스케줄을 말해 1명이 꼭 집에 있도록 일정을 조율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완벽함이 있을 수 없었고 그 룰이 어긋날 때면 또 싸움이 시작되었다.
"내가 저번에 양보했잖아. 이번에 네가 일정 바꿔."
"이거 급한 약속이라 쉽게 못 바꾼단 말이야."
자매들의 싸움은 끝이 없고 그 원인은 어찌나 다양한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싸움의 신호였다. 이 싸움이 언제쯤 정겨울 수 있을까? 아주 지겨운 싸움이다. 그런데도 우린 같이 살고 있다.
자매는 소중하다. 미래를 설계할 때,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진지하게 그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며 나의 부담감을 나눌 때 자매가 있어 좋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겪은 아픔과 시련을 떠올릴 때, 함께 극복해 낸 당사자들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들끼리 이상한 장난과 개그를 치며 서로 웃을 때 행복하다.
자매가 뭐길래, 이렇게 울고 웃을까. 가족이면서 친구 같은 이들이 2명이나 있음에 감사하다. 물론 잘 맞지 않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자매이며 나의 몇 안 되는 타고난 운 중 가장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