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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바라기 Oct 22. 2023

2. 흰 강아지와 검은 고양이

내 하루의 주인은 강아지와 고양이다.


인생의 전부라는 말은 참 무색하다. 그 전부라는 하나가 없으면 내 인생의 의미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에겐 그 전부가 있다. 이 전부가 없으면 내 인생은 흰밥 없는 스팸 한 덩어리이며 파김치 없는 짜파게티다. 흰 강아지와 검은 고양이. 아 두 마리이니까 온전한 하나는 아니지만 편의상 하나로 말하겠다. 어쨌든 이 강아지와 고양이가 내 전부라 하겠다.


강아지는 고양이는 내가 참 어리석을 때 내 곁에 왔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무지했다. 내게 온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취했고, 예뻐하기만 했지 돌볼 줄은 몰랐다. 그리고 26살에 그들의 삶에 뛰어들었다. 시간만 많던 나의 스물여섯에, 난 나의 24시간을 그들에게 쏟기로 했다.


타지에서 자취하며 보낸 약 6년의 세월을 청산했다. 시골로 내려가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제대로 된 주인의 노릇을 해보았다.


가족은 한 공동체에 속하는 집단으로, 피가 섞이거나 법으로 엮어지는 관계이다. 물론 세상이 바뀌면서 피와 법이 아니라도,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많이 생겼지만. 나와 강아지, 고양이는 피를 나누지도 않았고, 내 가족관계증명서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올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많이 생겼다고 했듯이 난 강아지와 고양이를 내 가족으로 정의한다. 같은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싸고, 자면 가족이지 무엇이란 말인가.

24시간을 온종일 같이 있다 보니 난 강아지와 고양이의 이상한 관계를 파악했다.


나의 앙큼하고 새침한 고양이가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좋아하고 있다는 것!

 

가끔 강아지를 데리고 집을 나간 후 돌아오면 우리 집 고양이는 강아지에게 가서 냄새를 맡으며 애교를 부린다. 마치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는 행동처럼.


하지만, 주인인 나에게 맹목적으로 따르고 밀당도 못하는 강아지는 고양이에게만은 참 도도하다. 고양이의 관심을 무시하고, 심지어 쫓아낼 때도 있다. 이놈, 웃기는 자식이다. 밖에 나가서는 다른 고양이를 보면 좋아하면서, 막상 자기랑 같이 살고 있는 녀석에겐 고고한 자태를 뽐내다니. 고양이의 속은 말도 아닐 것이다. 자신은 미워하면서 자기 눈에 하찮아 보이는 집사(강아지에게는 주인)만 졸졸 따라다니니, 아주 고양이의 자존심에 먹칠을 한 거나 마찬가지일 거다.


이 귀여운 아이들의 이상한 관계를 관찰하며 함께 산 지도 1년이 가까워졌다. 변한 게 있다면, 강아지와 고양이가 예전보다 더 내게 귀해졌다는 것. 나도 나름 그들의 삶에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


내 하루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화장실을 치우고, 물통을 씻고 새 물로 채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의 강아지는 알레르기로 고생 중이라 그가 좋아하는 간식을 중단한 상태이다. 알레르기 처방 사료만 먹이자니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만, 난 강아지의 건강한 장수를 위해 온 힘을 다 쏟고 있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라 밤마다 난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어 주고, 노묘의 길에 접어든 아이를 위해 치아 관리에 힘쓰며 양치질을 하기 위해 씨름한다. 내 하루는 동물에 의해, 동물을 위해 흘러간다.


나에게 전부인 이들과 내 시간의 전부를 쏟는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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