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바라기 Oct 22. 2023

8. 우당탕탕 초보 고깃집 사장님

어설퍼도 괜찮아. 더 나아지고 있잖아.

초보 고깃집 사장님이 탄생했다!


00 고깃집의 명함엔 엄마의 이름 석자가 새겨졌고, 이건 엄마 인생의 첫 명함이 되었다.


엄마의 새로운 시작이다. 피부 마사지 샵에서 손님들의 얼굴을 만졌던 손으로 삼겹살을 손질하게 됐고, 화장품과 미용기기가 아닌 상추와 양파, 마늘을 들고 나르게 됐다. 고깃집 오픈 첫날엔 우당탕탕 그 자체였다.


밥이 타버려 뿌연 연기가 식당 부엌에 가득했고, 콩나물 무침이 가득 담겨있던 그릇을 떨어트려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식당 전체에 울렸다. 미숙한 초보 사장님은 포스기 작동도 어려워해 현금영수증을 어떻게 등록하는지 아무것도 모르 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기름장을 달라, 된장찌개에 땡고추를 더 넣어달라 등등 손님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엄마는 연신 진땀을 흘렸다.


오픈 주의 전쟁 같은 나날이 끝났다. 그리고 이 전쟁은 종전도, 휴전도 없이 매주 치러야 한다니. 사실 '적'이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테다. 손님은 적군이 아닌 아군이니깐.


초보 사장님은 음식 맛에 집중했다. 매일 된장찌개 레시피를 바꿔보고, 딸들에게 평가받았다. 우리는 엄마의 "맛있어? 어떤데?"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사실 난 엄마의 요리는 그리 좋아하진 않았었는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식당 사장님이 되면서 엄마의 요리가 맛있어졌다. 엄만 그만큼 고깃집에 진심을 다해 노력했고, 메뉴와 맛의 성장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했다.


그런데, 이 초보 사장님이 놓친 게 있다. 가게 운영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장부 정리를 하지 않아 한 달 수입, 지출액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마진율이 몇 퍼센트인지 알 수도 없었다. 필요한 재료나 물품들을 미리 구매하지 않고, 그때그때 사 비용은 오히려 높아졌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지자체에서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여러 있었다. 우리 지자체에서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방문자 등록 안심콜 서비스를 지원해 줬는데, 이것조차 우린 신청을 하지 않아 몇 달간 지원을 받지 못했다. 방명록 작성 때문에 꽤나 곤혹스러운 적이 많았기에 가장 필요한 서비스였다. 뒤늦게 군청으로 가서 이 서비스도 신청했다.


부랴부랴 난 자영업자 매출관리와 관련한 어플을 찾았고, 매일 밤마다 매출액과 지출액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출 영수증을 정리하여 가장 많이 구매하는 품목인 양파, 마늘, 쌀, 콩나물에 대해선 가까운 도매 거래처를 찾아 구매했다.


식자재가 아닌 일회용 앞치마, 포장용기, 일회용 봉투와 같은 물품들은 인터넷을 통해 최저가로 구매했다. 이런 노력으로 나름 체계적인 매출관리를 시도했다.


그런데, 식당은 음식 말고도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방명록 작성 여부, 방문 인원수 제한을 확인해야 하는 코로나19와 같은 특수 환경도 문제였다. 또한 위생을 철저히 해야 했고, 화재 등 혹여나 일어날 사고에 대비해 보험가입도 필요했다.


그 당시에 우리 고깃집의 가장 중요한 사항인 리뷰 평점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좋지 않은 리뷰가 있을까 매일 네이버에 들어가 점수를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우린 배달은 하지 않아서 [배달의 민족] 리뷰점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나름 다행인 셈이었다. 잠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적도 있었기에 근로계약서 작성 등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한 번은 어느 이사 업체가 우리 고깃집 주차장에 큰 대형 책장을 뻔뻔하게 버리고 간 적이 있었다. CCTV에 찍혔고, 이를 군청에 문의하니 군청에서 수거해 갔다. 폐기물 수거까지도 생길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자영업의 세계였다. 


초보 사장인 엄마는 유난히 손님들과 상대하는 걸 불편해하고 난감해했다. 그래서 컴플레인과 요청사항은 항상 아르바이트생인 딸들에게 맡았는데, 싫은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우리 또한 불만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사장님이 직원 뒤에 숨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린 여기에 계속 있을 게 아니라 취업하면 근무지로 돌아가야 했기에 엄마도 밖으로 나와서 손님들과 대면해야 했다. 나중을 위해서 엄마가 직접 피드백을 받고 대응하는 행동을 미뤄서는 안 되었고, 엄마도 한 번 두 번 나오니 엄마 특유의 넉살과 살가움을 손님들에게 발휘하게 되었다.


역시 초보 사장님도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낯선 역할로 해내며 엄마도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전 07화 7. 아직도 여전히 다른 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