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 온 지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상해 오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나들이를 가보기로 했다. 아직 몸이 경직된 적응기인 건 확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여행이 긴장감을 풀어줄 것만 같았다. 1,2화와는 다르게 '본격 여행 에세이'임을 밝혀주는 서막의 3화를 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밖은 여행객임을 맘 껏 뽐낼 수 있는 선글라스를 쓰기 딱 좋은 날씨었다.
출발지는 기숙사 바로 앞인 롱바이신춘(龙柏新村) 역이다. 숙소 근처에 10호선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10호선은 우캉루-신천지-예원-난징동루-와이탄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호선으로 관광에 최적화가 되어있다. 상해는 지하철도 QR코드를 찍어 출입이 가능하다. 아무래도 한국에 카드를 쓰는 게 일반적인 결재 수단인 것처럼 중국은 QR이 결재수단으로 자리 잡았기에 돈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가 QR로 통일되는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여행하기에 편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지하철을 출입할 때마다 짐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액체류의 경우에는 시음회를 펼쳐야 할 수 있으며, 가방은 공항처럼 까다롭진 않지만 레일에 태워 검사하는 형식이다.
그렇게 조금은 다른 지하철을 타고 '신천지'에 도착했다. 롱바이신춘역에서 10호선으로 약 25분 정도 소요된다. 신천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위치로도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임시정부 맞은편에는 '뉴욕베이글뮤지엄'(런던베이글과 한통속인지는 모르겠다.)이라는 핫한(?) 가게도 들어서 있고, 주변에 맛집과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일명 코리아타운에서 보다 신천지에서 더 많은 한국인들을 본 것 같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 번 본 적이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바로 신천지 스타일이라는 쇼핑몰로 향했다. 신천지 스타일에 들어가는 순간 시원한 기운이 바로 느껴졌다. 인위적인지만 상쾌한 에어컨 바람, 목적을 정하지 않고 온 것도 있지만 35도 폭염으로 인해 도저히 밖에서 돌아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쇼핑몰에는 외국 브랜드가 많이 자리 잡고 있어 종종 아는 브랜드 들도 눈에 보였다. 한참 동안 도파민을 뿜어대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뱃속 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켰다.
점심은 딤섬 너로 정했다. 중국 남부, 홍콩 하면 떠오르는 대표메뉴인 딤섬이다. 남부식 딤섬은 보통 쫄깃한 피 안에 고기와 야채 다진 것이 육즙, 채즙과 같이 채워져 있는 형태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뜨거운 육수에 혀를 디일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음식이다. 딤섬집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커플이나 가족들이 자리 잡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혼자라는 헛헛함을 느낄 타이밍에 종업원이 불러 세웠다.
"혼자 드실 거면 이 자리 괜찮으세요?"
헛헛함을 느끼기도 전에 혼자라는 장점이 발휘됐다. 핸드폰 화면 중앙에 크게 적혀 있는 대기 번호보다 훨씬 빨리 불린 것이다. 웨이팅 줄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혼자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웨이팅 하는 사람들은 강제로 먹방을 시청해야 했고, 나 또한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먹방 찍는다는 느낌으로 야무지게 즐겨줄 심산이었다.
처음 가본 식당은 오히려 메뉴 고르는 게 쉽다. 잘 모르기에 BEST만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맛있어 보이는 빵과 딤섬, 이름 모를 고기 이렇게 3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아니면 시내 중심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먹었던 딤딤섬과 같은 딤섬집과 가격은 별반 차이 나지 않았다.
먼저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갈색 돌덩이 같은 빵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동그란 모카빵 같기도 했다.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뜨거운 속이 있어 혀를 델뻔했지만, 과연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맛이다. 두 번째 메뉴인 샤가우는 한국에서도 많이 먹은 새우 딤섬인데 피가 쫄깃쫄깃하고 속은 생우의 탱글함으로 꽉 차있어서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시킨 고기 요리는 중국 맛을 머금고 있었고 오돌뼈 같은 식감과 고기 지방 특유의 비린 맛이 많이 났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메인 요리를 먹고 나서 국룰인 디저트를 먹기 위해 위에 언급한 뉴욕베이글뮤지엄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베이글 맛을 잘 모른다. 가장 최근에 먹은 베이글은 한국에서 핫하고 한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이었다. 무려 4시간의 대기 후에 들어가서 먹은 베이글은 맛있었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베이글뮤지엄'에서 대파크림베이글을 8천 원의 돈을 주고 산 이유는 '나 상해에서 뉴욕베이글뮤지엄 먹어봤어'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함이 아닐까. 참 이게 뭐라고.
빵까지 먹었으니, 이제 커피 타임이다. 하루의 감성을 마무리할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39원으로 약 8천 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순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똑같은 원두를 사용하고 맛도 똑같겠지만 왠지 모르게 당한 기분이 들면서 맛도 구수하면서 향긋한 맛이 아닌 그저 쓰디쓴 맛만 느껴졌다. 일기를 쓰며 감성까지 글자로 채워 넣고 나니 하루 나들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나는 혼자 여행하기보다 누구와 함께 여행이라는 감성을 채워가는 걸 선호했다. 그렇다 보니 여행의 목적지나 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항상 제일 중요한 안건은 '누구와 가는가'였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기에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감사함을 혼자 돌아다니며 다시 한번 느낀다. 귓속에 이어폰을 파묻고 아무 말도 안 한 체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