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첫 출근을 앞둔 날 밤 몸도 긴장이 됐나보다. 아무래도 네번째 발가락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예정된 상해 첫 출근은 고객사 출장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상해 첫 출근이 아니라 출장지인 항저우 첫 출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과는 다른 일이라는 사실에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첫인상이 반을 먹고 간다 하지 않는가. 비단 소개팅에서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할 때,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 항상 뒤따르는 말이다. 눈 밑에 자리 잡은 다크서클이 영향을 줄 첫인상을 실력으로 뒤집기 위해 주말을 투자해 미팅 내용도 모두 숙지한 상태였다.
'자 이제 실전이다! 할 수 있다!' 출장 당일 호기롭게 다짐을 하며 집을 나섰다.
항저우로 넘어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나왔다. 주말과 다르게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게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그런 바람이 있었기에 바람이 좋았나 바람바람바람.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차를 타는 장소에 같이 출장 갈 동료들이 만화 원피스처럼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상해에서 두 시간 반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정신을 깨운다는 최면을 걸고 곧바로 첫 번째 미팅에 들어갔다. 사전조사도 했겠다, 그래 다 해결해 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미팅 내용은 그새 변경되었는지, 고객사의 변덕인지 준비한 자료는 하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쪽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당연히 안 해본 것이기에 모를 수 있지만 그 당연함은 나에게 부끄러움이었다. 한국에서 너스레 '할 만큼 했다, 이제 모든 일이 다 똑같다고 느껴진다' 이런 말들을 하고 다녔던 스스로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 우물 안 개구리 :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비꼬는 말, 조금 과장을 보태 딱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
오후 미팅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 또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포장하며 이야기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미팅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확인해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한 마디였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첫인상에 공들여 왔건만, 공든 탑이 무너진 것이다. 거기에 다크서클의 영향력까지.. 이걸 되돌리려면 최소 한 달의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단 하루 출근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정말 한참 멀어도 멀었구나, 정신을 다시 차리게 해 준 하루였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앞으로 최소 한 달간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된 나를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래도 원영적 사고(럭키비키 혹은 럭키비키시티(?)라고 한다)를 하자면, 이것 또한 얻기 힘든 경험 아닐까? 이 소중한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나아가야 할 열정과 방향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밥도 안 넘어갔을 텐데, 밥은 아주 잘 넘어간 걸 보면 위가 눈치가 없는 게 분명하거나, 스트레스보다는 자아성찰하는 과정인가 보다. 당분간은 계속 우물 안 개구리 아니, 우물 안 올챙이인 나를 돌아보며 발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