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날짜 상으로 가을이 왔다. 체감은 아직 한 여름이지만 쇼핑몰에도 반팔은 어느새 사라지고 긴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해도 낮 최고기온이 35도로 아직까지 뜨거운 햇볕이 자리를 비켜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일요일이지만 신체 리듬에 맞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하루를 꽉꽉 채워 보내지 않고 여유롭게 보내도 괜찮은데 왜 이리 빨리 일어난 건지 애꿎은 출근시간만을 탓할 뿐이다. 아침에는 김기태 작가님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단편 소설 모음집을 읽었다. 상해 오면서 책을 3권 들고 왔는데 벌써 두 권이 끝나간다. 남은 한 권은 정말 아껴 읽어야겠다.
12시, 햇볕이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시간,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은 임무는 현재 비어있는 방을 채워 넣는 것. 햇볕을 이길 마음도 이길 수도 없지만 다행히 쇼핑몰이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어 잠깐의 이동만 하면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 방에는 기본적인 가구를 제외하고는 생활에 필요한 그 무엇도 없기에 사야 할 물건이 많았다. 없을 때는 없는 대로 살았는데, 이걸 막상 채워 넣으려고 하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덕션이 있으면 냄비가 필요했고, 냄비가 있으면 국자나 다른 주방용품들이 필요했다. 그것들을 설거지하기 위한 세제, 그릇 받침대... 이렇게 이어가며 생각하니 끝도 없이 필요한 게 생겼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삶도 똑같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500원만 있어도 행복했고, 대학생 때는 5만 원만 있어도 행복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게 내 삶에 채워지니 오히려 풍족함이 아니라 부족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물질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풍족함을 느꼈던 적이 많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사탕 하나면 욕심이라는 공간을 다 채울 수 있었는데, 내가 성장함과 같이 욕심도 어느새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성장하는 속도보다도 더 커져서 나중에는 도대체 얼마나 커질까 두렵기도 하다. 나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먼저 느꼈기에 한때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유행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직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가르침이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물건을 채워 넣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무소유의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닌,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었기에 꼭 필요한 물건만 구매했고 비로소 방에 약간의 풍요로움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중국 와서 계속 음식을 사 먹기만 했는데 드디어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구매한 물품을 가지고 곧바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중국음식을 좋아해서 계속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라면인건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큰 것이라고 여겨지는 물질은 욕심이 나고 채워지지도 않고 부족함을 자주 느끼게 한다. 반면에 라면처럼 일상과 붙어 있는 것은 한 봉지에도 큰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욕심도 참 선택적이라 삶을 더 피곤하게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