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형적인 술찔이다. 평소에 술을 즐겨마시지 않고 술의 맛도 모른다. 그저 남들 따라 마시거나 ‘오늘 한라토닉 먹을까?’ ‘산토리 맛있던데’ 등등 아는 척만 1등이다. 그런 오늘 정말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중국에 오더니 입맛도 변한 건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서 하얼빈 맥주 한 캔을 구매했다. '딸각' 소리와 함께 마신 첫 한 모금은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탄산이 목구멍을 통해 쭉쭉 내려가는 게 오늘 하루의 고난을 같이 쓸어 내려가는 느낌, 하지만 결국 한 캔을 다 먹지는 못했다. 물론 술만 찌질하게 마신 건 아니다.
오늘 하루도 참 찌질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힘든 푸념만 내뱉은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후회됐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어른'이라는 경계선이 나뉜다고 생각해 왔다. 오늘만큼 나는 완전 미취학아동이었다.
탁구공이 되어 이리저리 튕겨져 나가면서 멘탈이 부서졌고, 최대한 웃으면서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점심으로 주문한 샐러드는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리곤 업무차 한국에 전화를 했다가 선배들에게 나도 모르게 푸념을 읊기 시작했다.
'저 지금 그냥 한국 돌아가면 안 될까요??'
왜 이렇게 연약했지. 아직도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나 보다. 이제는 혼자서 일어서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데 아직은 성숙의 정점에 도달하지 못했나 보다. 올해 많은 책을 읽으면서 훌륭한 작가님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인성에 품격에 감탄하며 저렇게 성숙한 마인드를 가져야겠다 다짐했었다. 오늘까지는 실패했지만 내일부터 다시 도전한다면 '어른'의 경계선을 뛰어 넘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