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중국 대련으로 유학을 떠났을 무렵, 전 직장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이 왔었다. '너 상해에서 근무할 생각 없니? 어차피 중국어 공부할 거면 일하면서 하는 게 낫지' 당시에는 일하기 싫다는 걸 이런저런 핑계로 에둘러 표현하며 거절했었지만 그때가 복선이 되었나 보다. 기회가 닿아 상해 출장을 가게 되었다. 중국어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하루하루 퇴사를 논하며 동고동락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1년 중국 유학을 한 나는 거진 중국인이었다. 보잘것없는 중국어 실력은 부풀고 부풀어져 어느샌가 네이티브가 되어 있었고, 첫 번째 출장자로 낙점되어 버린 것이다. '저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슈퍼 코리안입니다'라고 골백번 외쳐도 정해진 걸 돌릴 수 없었다.
첫 번째 희생양이라는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인천공항 2 터미널에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도착해 있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2 터미널도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취항하는 항공사도 많지 않은데 진짜 여행이 붐이긴 붐인가 보다. 비행기표 발권을 위해 곧장 키오스크로 향했다. 키오스크로 다가가는 그 타이밍이 맞아서인지, 아니면 키오스크를 잘 이용하지 못하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시골 출생이라 약간 촌티가 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공항 도우미 한 분이 나에게 붙어 발권을 도와주셨다. 친절하게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과 그렇고 싶지 않은 태도가 상충한 듯 보이는 안내원분은 하나 가르쳐 주고 빨리하라는 듯 먼 산을 바라보는 식이었다.
'저도 나름 해외여행 일 년에 두 번은 가거든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친 뒤 곧바로 문제가 생겨 도움을 받았다. 마음속으로 외치길 참 잘했다. 발권 뒤 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와 짐 붙이는 곳으로 향했다. 수화물 위탁하는 곳은 언제나처럼 기다림의 인내심 테스트를 끝날 것 같지 않은 대기 줄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기 줄 뒤꽁무니에 붙어 핸드폰으로 괜한 네이버 뉴스만 뒤적이다 보니 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가족으로 보이는 세 분이 계셨는데 40대의 아들과 70대가 넘어가 보이시는 어르신 두 분이었다. 아들이 효도 관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왔고, 부모님은 처음으로 해외에 가는 모양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오는 게 쉽지 않은데 참된 자식이구나..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버님이 먼저 그 자리에서 탈출하셨다.
'아 저 아저씨 또 어디 가는 거야'
아들분은 곧바로 전화를 하셨고 제발 눈앞에 보이는 곳에 있어달라 간곡히 호소하고 있었다.
'내가 짐이 세 개여 완, 투, 쓰리 이거 들고 갈 수 있나? 두 개밖에 안된다는디'
그 순간에 어머님께서는 옆에 지나가는 도우미 분을 잡고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시고 계셨고 아들은 또 한 번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냥 당연한 걸 묻는 어머니가 약간은 창피하셨나 본 지 괜스레 어머니 모자 패션을 지적하셨다. 그러고 나서 어머님도 바로 줄을 넘어 탈출을 하셨는데 탈출한 곳이 위탁 수화물 데스크 바로 앞이었다.
'엄마! 엄마 거기 가면 안 된다고, 참.. 미치겠네'
아들 분은 이제 허탈한 듯 웃었고,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보기 좋아 같이 웃고 있었다. 당사자는 복장 터지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느껴졌던 것 같다.
어찌어찌 나머지 수속을 다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으니 어느새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 닿아 쿵쿵 거리는 가벼운 충격감으로 상해 도착을 알려주었다. 상해에 입국할 때는 이름 모를 여자 아이돌 분들과 같이 입국하게 되었다. 맞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정말 시작이 심상치 않다. 마침 입국장으로 나가는 타이밍이 또 그분들과 겹쳐(의도하지는 않았다. 운명일 뿐) 나가자마자 카메라 셔터 소리와, 플래시가 나를 반겼다. 나를 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해가 나를 이만큼 반겨주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중국 연예신문 한 면에 내 사진도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끝내 찾지는 못했다..)
상해는 중국에서 제일가는 도시 중 한 곳이다. 사실 이렇게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중국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도시 이름이고 한국인들도 종종 여행을 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나는 두 달을 머물 예정이었다.
그 시작이 이렇게 좋았기에 좋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온 중국은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곳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카오톡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죄다 한자로 적혀있어 문맹이 된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는 것. 아니 문맹이 되었다가 맞겠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차량으로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편하게 왔지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중국 핸드폰 번호가 꼭 필요했고, 중국 지도가 필요했고, 중국어가 필요했다. 청소도구를 사고 싶어도, 물을 마시고 싶어도 뭐 하나 쉽지가 않았다. 결제는 QR코드로 진행하고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 많았다. 무언가를 하나 찾고 구하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니,, 중국어로 써져 있는 화면만 보다 보면 어느샌가 두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 있고 있었구나,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걸 살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또 잊고 있었구나'
새로운 회사로 입사했을 때도, 새로운 프로세스를 적용할 때도,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것을 먹을 때도 항상 이질감을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는데 한동안 너무 변화 없이 있다 보니 그걸 잊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중국에 오면서 오랜만에 불편한 이질감을 느꼈다. 말 자체는 되게 부정적인 느낌인데 이 불편한 이질감이 반겨주는 느낌도 들었다.
'너 그동안 안주하면서 편했지?? 이 느낌이야 잊고 있었지??' 하는 기분이랄까.
새로운 것에 적응을 하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라는 조언 같기도 했다.
오랜만에 먹은 중국식 볶음밥은 이질감이 전혀 없었고, 그저 맛만 있었다. 새롭다는 것도 그냥 선택적인가?
무튼 이렇게 80일간의 상해 일주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