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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일지] 여행의 의미(feat. 쑤저우여행)

by zunrong

[2024.10.28]


게스트하우스는 새벽시간에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들어오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덕분에 한 번씩 잠에서 깨긴 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침의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만 배경으로 깔려있었다. 노트북을 챙겨 1편 글을 마무리하고, 커피 대신 비타민 음료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한참 구경했다.

IMG_1029.jpg?type=w966 날씨는 먹구름

역시나 비가 오는 날씨라 축축해진 신발이 더 축축해지겠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과 함께 게스트하우스와 이별을 준비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가는 길 프런트 직원에게 중국에서 산 허니버터아몬드 하나를 수줍게 드렸다. 아직은 내향적 인간이 맞나 보다. 짬처리(?)도 아니었고,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주머니에서 포장지가 다 쭈글 해진 중국 과자를 하나 꺼내주셨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달달함을 안고 밖으로 향했다.


여행도 밥심이라고 곧바로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찾아다녔다. 7년 전 유학시절에는 가는 곳곳 아침을 팔고 계셨던 것 같은데 중국도 트렌드가 바뀌었는지, 고물가에 집에서 드시는지 아침시간에 식당 찾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곳이 있어 확신과 함께 들어가 보니 빠오즈와 훈툰을 팔고 계셨다. 따뜻한 훈툰 한 그릇은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소고기로 꽉 찬 빠오즈도 중국 로컬의 향기가 물씬 묻어났다. 이거 이거 아침부터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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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툰은 한국의 만둣국 느낌이다. 아니 대놓고 만둣국이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동방지문이라는 건물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문의 형태를 하고 있는 높은 건물로 쑤저우 랜드마크라고 한다. 그 옆에는 호수가 있어 호수까지 구경을 하기 딱 좋았다. 항저우의 서호만큼 넓은 호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륙 스케일이라 해줄 만했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 고개를 들고 본 동방지문의 웅장함은 딱 3초면 충분했다. 그 이상으로 감상하기에는 목 디스크와, 동방지문이 싫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IMG_1037.jpg?type=w966 3초간 본 웅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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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은 전형적인 중국의 대형 쇼핑몰이었다.

다행히 비바람을 피할 대형 쇼핑몰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분명 잠깐 비를 피하러 간 것인데, 쇼핑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도파민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중국은 곧 있으면 광군제 시작이고, 인터넷에서는 벌써부터 광군제 세일을 진행 중에 있다.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이곳저곳 들려 한국 가격하고 비교하고 차이가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등을 돌렸다. 그대로 쇼핑몰에서 빠져나와 진지호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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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반대편에 있는 건물들을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찍다가 우연히 illy 커피를 발견했다. 한국에서 주말마다 캡슐로 나를 반겨주던 친구이기에 타지에서 더 반가웠다. 가격도 착하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18위안. 18위안에 감성을 사고 자리에 앉아 일기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밖으로 나와 호수 반대편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았다. 어차피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쫓기면서 관광지를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사람이 가끔가다 보이는 이 호수를 걷는 것도 꽤나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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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귀에 꽂고 악동뮤지션 컬렉션을 재생한다. 그렇게 걷다 보니 생각에 잠긴다.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이건 동네 앞 공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여행이 맞긴 할까?


여행은 나에게 생각의 시간을 준다.


여행에 왔다는 그 의미 하나로 쉽게 감성에 빠지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때로는 유명한 관광지를 보며, 때로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곳을 돌아다니며 나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가끔은 안주함에 일상에서 도망치라고 권유하기도 하고, 가끔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넣어주기도 한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조급함을 주지만, 여행 때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여유로움을 준다. 이래서 여행이 필요한가 보다. 반드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생각의 시간을 주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여행 아닐까.


생각이라는 행위에도 칼로리 소모가 있는지 금세 배가 고파졌다. 호수를 반 바퀴 돌고 발견한 미슐랭 식당에서(미슐랭은 못 참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뒤 쑤저우 역까지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금방일 거리를 몇 번 고민하다 다시 쑤저우 역까지 사부작사부작 정취를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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