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4]
주말을 이용해 상해에서 흘리고 다녔던 감성들의 흔적을 좇아 나갔다. 날씨가 좋아서, 풍경이 예뻐서, 음식이 맛있어서 흩뿌려놨던 감성들이 '미련'으로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어 마지막으로 느끼며 회수에 가야 더 이상 미련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첫 번째 목적지는 우캉루거리.
우캉루멘션을 보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고 기억 속에 남아있던 우캉루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초록 초록한 나무와 파란 하늘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당시에는 국경절이라 사람이 많았기에 다시 한번 가보았는데 역시! 중국은 중국, 매 주가 국경절이나 다름없다. 인파를 피해 외곽길로 천천히 걸으며 동네 구경을 했다. 한 블록 차이의 거리지만, 그 100여 미터가 주는 공간의 느낌은 매우 다르다. 괜스레 숨을 크게 들이셔 보기도 하고 음악에 취해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만큼 이 거리를 걷는 기분이 꽤나 좋다. 동네를 구경하다 보면 중간중간에 힙한 소품샵들도 많았고 구수한 빵 냄새가 나는 베이커리도 많았다. 그렇게 감성들을 주워 담으며 걷다가 역시 감성 충만한 카페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보면서 의자에 반쯤 걸터앉았는데 가격이 굉장히 사악했다. 커피 한 잔 가장 저렴한 게 70~75원 정도 하는 가격, 한국 돈 약 15000원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일어나다 직원분과 눈이 마주쳐 자리를 옮기는 척하며 콜드브루를 한 잔 주문했다. 분위기는 그냥 커피에 진심 그 자체인 곳이었다. 모든 커피는 핸드드립으로 내리고, 원두는 그때그때 일정량 빼서 내리는데 원두 종류가 정말 많았다. 핸드드립으로 내릴 때는 물 온도까지 온도계로 정확히 맞춰 내리는데 맛이 맘에 안 드시면 버리고 새로 만드신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1분 내에 나오는 커피집이 아닌 시간을 가지고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카페였다. 인생에서 마셔본 콜드브루 커피 중 단연코 일등이다. 일본식 커피라고 하셨는데 역시 일본인들은 하나를 파면 끝까지 파나보다. 커피 맛도 모르고 30초면 벤티 사이즈 커피를 들이켜는 나인데, 큰돈을 냈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이 카페가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앞에서 커피를 내리시는 장인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냄새부터 음미하게 됐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에, 입으로 넘어가는 순간 콜드브루 특유의 청아함과 구수함이 이븐 하게 느껴진다. 약간의 산미도 느껴지고 혀끝에 쓴맛이 진하게 남는다. 친구들이 봤으면 커피 한 잔에 온갖 꼴값을 다 떨고 앉아 있다고 할 그 모습! 외국이라는 특수한 경우에 기대 꼴값 좀 떨어본다.
커피 마시는데 고급 바에 와서 위스키를 먹는 느낌이랄까.(바에서 위스키를 먹어본 적 없는 게 팩트) 축구를 보면(갑자기?) 선수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각각 다른 포지션에 두고 다른 역할을 주문한다. 이 커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많은 종류 원두 맛에 맞게 각각 개성을 살리며 극강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온도까지 다르게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커피를 원샷하며 마시는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캉루에서 커피를 즐긴 뒤 또 무작정 걷다가 연이은 칼로리 소모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길거리 음식에 도전했다. 안에 찹쌀과 두부 조각이 들어간 밥전 같은 느낌의 음식인데, 고추기름과 굉장히 잘 어울리고 맛있었다. 골목으로 빠져 완전 로컬의 식당에서 12원짜리 알 수 없는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버섯, 고기가 들어간 전분 물 느낌으로 아침으로 먹는 음식인가 보다.
밥을 해결하고 신천지로 향했다. 신천지는 상해에 오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갔던 관광지였다. 세련된 느낌의 중국을 보여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위치한 곳이기에 친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신천지 근처 빵집에서 한때 굉장히 핫했던 두바이 초콜릿 내용물이 들어간 사악한 가격의 빵도 먹어보고, 이제는 대기 줄이 생겨버린 뉴욕베이글뮤지엄도 다시 찾았다.
TOP1, TOP2가 아닌 최애 TOP3 초코 베이글은 역시나 맛있다. 두 번 먹으니 이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천지에서도 주변에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한참을 돌아다녀 보았다.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하자, 가장 큰 미련으로 남아 있던 와이탄으로 향했다. 와이탄은 이미 여러 번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미련이 남았던 곳이다.
원래 나라는 사람이 도시의 야경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고 야경은 감성에 치명타를 주는 곳이기에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앞선 글에서 여행의 의미를 '생각을 주는 시간'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야경이 정말 큰 여행의 여정 중 하나인 것이다. 동방명주의 불이 켜지기 전 아직은 완벽하게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부터 불이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멍하니 앉아 음악을 들으며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와이탄을 구경했다.
감성팔이란 '감성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따위를 말한다. 이곳의 풍경이, 야경이, 날씨가, 음식이 나에게는 다 감성을 자극하고 상해에 현혹시켜 버리는 감성팔이의 매개체였다. 감성팔이라는 게 비교적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이 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닌 자연이, 도시가 하는 감성팔이는 오히려 좋기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