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숨쉬는 공기에 PC가 묻어 있을 때
런던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박물관을 하나하나 도장깨기하며 다녔다.
그 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다문화가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올바름의 기준에 있어 예민한 편이라 생각했던 내가 그간 얼마나 무지했는지 새삼스레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동용 만화에는 주인공들이 표준어뿐 아니라 다양한 억양의 영어를 구사한다.
웨일즈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도 있고 프랑스나 인도 억양으로 말하는 캐릭터도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성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TV 프로그램에서도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출신지의 억양이 섞인 말투를 굳이 표준어로 바꾸어 말하지 않는다. 억양에 따른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나라이지만 비수도권 출신의 연예인이 방송에서는 대부분 서울말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섞여 사는 사회에서 표준어만 쓰는 게 더 어색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달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과연 덜 익숙해서 잘 못 알아듣는 것과 잘 못 알아들어서 덜 익숙한 것,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일지 생각해 보는 것도 한번쯤 고려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데까지 신경을 쓴다고?' 싶었던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다양한 신선함이 있었다.
박물관 갤러리 텍스트의 어느 이미지나 간판에서든 여성과 다인종이 등장하고 밋업, 투어, 독서 모임 다양한 행사에서 페미니즘이 당연하듯 다루어진다.
호기심에 갔었던 박물관의 여성 과학자 투어에는 할아버지 가이드분이 나와 설명을 해 주셨고 전쟁박물관엔 전쟁 당시 여성 군인과 여성의 생활과 관련된 구역이 마련되어 있으며 런던 지하철 어디에나 붙어 있는 교통공사 TFL 광고 이미지에는 미혼부, 장애인 여성이 등장한다.
런던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관이 무조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여전히 문제가 많은 부분도,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런던에서 가장 충격받은 동시에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논점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모두가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같은 생각이든 다른 생각이든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여겼을 때 당당하게 제지를 하고 그러한 행동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분위기.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분위기 못 맞추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되거나 뜬금없이 예민한 사람을 낙인 찍힐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최악이라 부를만큼의 많은 차별과 과도기를 거쳐 나올 수 있었던 지금의 모습이지만 내가 만나는 런던 사람들은 대부분 런던이 아직 너무 뒤쳐졌다고 말한다.
답답하고 비효율적이고 실망스러운 런던 생활 속에서 한번씩 이들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