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의 ⟨설녀⟩가 일본의 전통설화와는 다른, 창작옛이야기인데도 일본의 대표 옛이야기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많은 일문학자들은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국내와 해외의 일문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설녀’가 등장하는 전통설화에 나타난 공포스러운 이미지, ⟨학 아내⟩ (또는 두루미 아내)와 같은 일본 이류교혼담의 서사, 보들레르의 ⟨달의 혜택⟩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악몽⟩ 전설에 등장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 따위가 잘 융합된 것을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1]. 특히 성혜경은 "설녀가 서양인의 손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와 이야기 구조가 이 작품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2]. 성혜경이 언급한 '이야기 구조'란 "일본인의 심금을 울리며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해온 異類婚個譯의 구조"를 의미한다. 또한, 그는 헌의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그 이야기 구조를 도식적으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적인 요소와 서양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융합하고 “치밀하고도 뛰어난 구성력,전개방식, 응축된 이미지와 섬세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문체”를 구사하였기 때문으로 보았다.
헌이 1904년에 영어로 출간한 ⟨설녀⟩가 쉽사리 일본 고유의 이야기로 정착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는 일찍 감치 일본 중학교의 영어교재로 채택되고 일본어로 번역되면서 널리 알려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의 구전 현장에 흘러 들어간 헌의 ⟨설녀⟩는 토착화 과정을 거쳐서 여러 설화집에 일본 설화로 수록되었다. 성혜경은 헌의 ⟨설녀⟩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결말이 일본문학의 정조로 일컬어지는 ‘모노노 아와레’(ものの哀れ)에 부합되게 개작되었다고 말한다. 헌의 설녀는 대단원에서 금기를 깬 미노키치에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위협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정서에 맞게 ‘토착화’된 ⟨설녀⟩에서는 남편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는 이류 아내의 슬픔이 부각된다. 이렇게 일본식으로 개작된 결말은 일본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마쓰타니 미요코(松谷みよ子)의 ⟨설녀⟩나 유튜브에 올려진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설녀⟩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헌의 ⟨설녀⟩를 국내 일문학자들은 ⟨학 아내⟩와 같은 일본 이류교혼담에 착안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헌은 일본에 오기 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비극적인 이류교혼담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헌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전승되는 ⟨악몽⟩ 전설에 특별한 관심을 지녀서, 1878년에 ⟨악몽과 악몽 전설⟩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3].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악몽(nightmare)을 ‘나이트-마라’ 또는 ‘밤의 마라’라고 부르고, 일종의 유령 또는 요괴로 간주한다. 헌이 소개한 악몽 전설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밤의 마라’는 여자 유령인데, 용모가 추하지 않고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라는 방문에 난 구멍을 통해 침실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괴롭히곤 하였다. 다른 유령들과 마찬가지로, 마라는 일단 방에 들어오면 그 방식대로 해야만 방을 나갈 수 있다. 만약 출구가 막히면 마라는 방에 머물면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어느 날, 악몽 때문에 무척 고통을 겪던 어떤 남자가 방문에 난 열쇠 구멍을 마개로 막아버렸다. 열쇠 구멍을 통해 나갈 수가 없었던 마라는 기이하게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반한 남자는 정중하게 구애를 하였고, 마라는 그와 7년 동안 함께 살면서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어리숙하게 “여보, 당신이 어떻게 방에 들어왔는지 알면 놀랄걸.”하고 말했다. 마라가 몹시 궁금해하자, 남자는 경솔하게 열쇠 구멍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라는 자신도 열쇠 구멍으로 훔쳐보고 싶으니까 마개를 빼 달라고 했다. 남자가 부탁을 들어주자, 마라는 한 줄기 엷은 안개로 변해서 열쇠 구멍을 통해 영원히 사라졌다.
이러한 줄거리를 지닌 스칸디나비아의 ⟨악몽⟩ 전설은 헌의 ⟨설녀⟩와 유사한 몇 가지 모티프를 지녔다. 우선 이계 여자가 공포미(恐怖美)를 지닌 인물이고, 인간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는 것, 남자가 방심해서 아내에게 비밀을 발설하자 가족을 떠나는 것, 구멍을 통해 안개가 되어서 사라지는 것 등이 유사하다.
헌은 스칸디나비아와 일본의 이류교혼담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그린란드, 인도, 중국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이류교혼담에 지대한 관심을 지녔다. 1884년에 발간한 설화집 ⟪기이한 문학의 낙엽들⟫(Stray Leaves From Strange Literature)에는 여러 편의 이류교혼담이 실려 있다. 인간 남자와 샘의 요정이 교합하는 폴리네시아 신화, 야생 갈매기와 인간 남자의 결혼을 다룬 에스키모 설화, 천상계의 요정 바카왈리와 인간 남자의 사랑을 다룬 인도 신화 따위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1887년에 발간된 ⟪중국 유령⟫(Some Chinese Ghosts) 설화집에는 천상계의 직녀 여신과 인간계의 남자 동영의 결혼을 다룬 중국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헌은 견우직녀담과 일본의 칠월칠석 축제에 관해 쓴 ⟪은하수 로맨스⟫라는 유고작을 남겼다.
라프카디오 헌이 이류교혼담에 유달리 관심을 지녔던 것은 남녀의 사랑과 결혼의 근본적인 형태가 이류교혼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폴 머레이(Paul Murray)가 쓴 전기 ⟪환상적 여행: 라프카디오 헌의 삶과 문학⟫(A Fantastic Journey: the Life and Literature of Lafcadio Hearn)을 읽어보면, 라프카디오 헌이 이류교혼담에 끌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헌이 이류교혼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지녔던 것은 아마도 부모의 결혼과 자신의 결혼이 이류교혼담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두 남녀의 결합이었기 때문인 듯싶다.
라프카디오 헌은 1850년에 그리스의 이오니아 해에 있는 레프카다 섬에서 그리스 계 어머니와 아일랜드 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헌의 어머니 로사는 가난한 그리스 섬에서 태어나 그리스 정교를 믿었던 문맹자였다. 헌의 아버지는 점령국인 영국 군대에 복무하는 아일랜드인 외과의사였고, 프로테스탄트 교도였으며, 고등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헌의 부모는 성장 배경, 언어, 인종, 종교, 사회 계층이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어서 두 사람의 결혼은 이류교혼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세계에 속한 여인과 사랑을 했지만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던 헌의 아버지는 애인이 혼전 임신을 하자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가족에게 결혼 사실을 숨긴 채, 아버지는 결혼 이후 아내와 아들들을 내버려 두고 홀로 서인도 제도로 근무하러 떠났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헌의 어머니는 첫 번째 아들을 잃고 둘째 아들인 라프카디오를 홀로 힘들게 키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댁 식구들이 모자를 더블린으로 불러들였다. 두 살 된 아들과 함께 그리스를 떠나서 낯선 더블린에 와서 살게 된 헌의 어머니는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정신병원에 수용될 정도로 많은 아픔과 고립감을 겪었다.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헌의 어머니는 네 살 된 아들을 더블린에 남겨둔 채 다시 그리스로 돌아갔고, 헌의 아버지는 종교적인 문제를 빌미로 삼아서 결혼을 무효화하였다. 헌은 어머니에게 네 살 때 버림받았지만 평생 그리스인 어머니를 아일랜드인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부모가 이혼한 후에 헌은 아버지 이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헌은 후견인인 이모할머니의 재정적인 지원 덕분에 아동기에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가톨릭 학교와 영국 더럼에 있는 신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영국 더럼에 있는 신학교에 다닐 때 왼쪽 눈을 다친 헌은 시력을 잃었다. 그 이후 이모할머니가 파산하는 바람에 헌은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서 19세에 홀로 미국 신시내티로 이주하였다. 신시내티에서 작가와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시련을 겪다가 1890년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헌은 시마네 현에 있는 공립중학교와 사범학교의 영어 교사로 활동하면서 사무라이 집안의 일본 여자와 결혼하였다. 1896년에 일본에 귀화해서 ‘고이즈미 야쿠모’(小泉 八雲)라는 일본 이름으로 개명한 헌은 도쿄 제대와 와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다가 1904년에 일본 도쿄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헌은 유년기부터 끊임없이 세계 여러 지역을 이주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지녔다. ‘문명화된 유목민’의 삶을 살아온 헌의 이류교혼담 속에는 국적을 따지기 힘든 다양한 문화가 혼융되어 있고, 유년기의 삶이 스며들어 있다.

[1] 성혜경 (2009). ⟨라프카디오 헌과 일본문화-⟨설녀⟩를 중심으로⟩, ⟪일본연구⟫ 26, 197-217
[2] 앞의 글, 204면.
[3] “Nightmare and Nightmare Legends,” An American Miscellany vol.2, collected Albert Mordell, New York: Dodd, Mead & Co., 1924; Beong-Cheon Yu, “Lafcadio Hearn's Twice-Told Legends Reconsidered,” American Literature, Mar., 1962, Vol. 34, No. 1 (Mar., 1962), pp. 5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