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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Mar 02. 2022

11. 이류교혼담 속의 '갇힌 여인들'과 헌의 어머니

⟨샘 처녀⟩와 ⟨새 아내⟩

헌이 다시 쓴 다양한 이류교혼담 가운데서 내게 흥미롭게 느껴진 작품은 폴리네시아와 그린란드의 신화를 원작으로 삼은 ⟨샘 처녀⟩ 와 ⟨새 아내⟩라는 이야기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백조 처녀⟩ 유형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라프카디오 헌이 이 두 신화에 관심을 지녔던 것은 유년기에 체험했던 부모의 이혼,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유년기의 상처,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가 아닐까 싶다. 헌이 ⟨새 아내⟩와 ⟨샘 처녀⟩를 쓴 시기는 그리스인 어머니가 이오니아 제도 코르푸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타계한 지 2년 지나서이다. 헌은 ⟨샘 처녀⟩의 후반부 서사를 대폭 개작하였는데, 그 이면에는 개인적인 아픔과 바람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민족의 신화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한 글쓰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치유로서의 글쓰기라는 시각에서 볼 때, 헌의 옛이야기 개작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헌이 쓴 ⟨샘 처녀⟩(The Fountain Maiden)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샘의 요정은 보름달이 뜨는  남자 요정과 과일 열매를 훔치려고 지상으로 나온다. 그 둘은 힘센 추장 아키(Aki) 쳐놓은 그물망에 사로잡힌다. 남자 요정은 그물망을 탈출하지만, 여자 요정은 어쩔  없이 추장의 아내가 된다. 샘의 요정은 “오팔 광채가 흐르는 하얀 달빛의 몸을, 포획자의 손아귀에 잡힌 아름다운 물고기 같은  지녔다. 아키는 요정이 달아날까  샘물에 산호 덩어리를 잔뜩 넣어 막아 두었다.


샘의 요정은 추장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았지만 차고 기울기를 되풀이하는 하얀 달처럼 늙지 않았다. 샘의 요정은 임신하였고, 배를 갈라서 아들을 낳은 후 지상 세계에서 십 년을 더 살았다. 어느 날 샘의 요정은 남편에게 자신이 지상에 더 오래 머물면 영원히 죽을 수 있으니, 샘을 막아 놓았던 산호 덩어리를 치워 달라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다시 오겠다고 맹세하고는, 깊은 샘을 통해 지하 세계로 다시 내려갔다.


아들은 용모가 훤칠하고 피부가 하얀 소년으로 성장했다.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아들은 사라지고, 아키는 샘 옆에서 아내와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수백 년을 더 살았다. 초승달이 떠오른 어느 날 밤, 아키의 임종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달빛보다 더 하얗고, 호수 물고기처럼 매끈한, 하얀 여인이 사람들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와 자신의 빛나는 가슴 위에 아키의 잿빛 머리를 얹고 노래를 들려주면서 키스를 하고 늙은 얼굴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았다.


라프카디오 헌이 저본으로 삼은 라로통가(Rarotonga)신화의 결말은 다르게 펼쳐진다. [1] 제왕 절개로 아들을 낳은 샘의 요정은 ‘첫 아이를 낳으면 소멸하여야 한다”라는 이계의 전통에 따라서 죽을 위기를 맞는다. 아내는 남편에게 함께 샘물 아래 있는 이계로 내려가서 그릇된 전통을 바로잡자고 말한다. 부부는 다섯 번이나 이계로 함께 내려갔지만, 남편이 이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샘의 요정만 이계로 가고, 남편은 아들과 함께 지상에 남는다. 헌이 개작한 작품의 후반부는 원전과 매우 다르다. 헌은 샘의 요정이 훗날 다시 나타나서 성장한 아들을 자신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으로 서사를 바꾸었다. 이러한 개작에서 헌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네 살 된 헌을 더블린에 두고 그리스로 떠난 어머니는 재혼해서 네 아이를 더 낳았지만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이오니아 제도의 한 정신병원에서 십 년간 갇혀 있다가 죽었다. 헌의 옛이야기 개작에서 정신병원에 갇혔던 어머니에 대한 짙은 연민, 유년기에 받은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를 읽을 수 있다.

⟪기이한 문학의 낙엽들⟫(Stray Leaves From Strange Literature 1884)이란 책에 수록된 에스키모 신화 ⟨새 아내⟩(The Bird Wife)의 결말도 ⟨샘 처녀⟩와 거의 같다. ⟨새 아내⟩는 인간 여자의 형상을 한 야생 갈매기가 사냥꾼에게 붙잡혀서 결혼하는 ⟨백조 처녀⟩ 유형의 이류교혼담이다. ⟨새 아내⟩는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 유형과 비교하자면 선녀승천형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선녀승천형이란 선녀가 날개옷을 찾자마자 두 아이를 데리고 승천하고 나무꾼은 영원히 가족과 헤어진 채 지상에 남기는 것으로 끝나는 설화 유형을 의미한다. 헌은 ⟨새 아내⟩의 전반부에서는 그린란드의 공간적‧신화적인 배경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데 지면을 할애하고,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사를 본격적으로 펼친다. ⟨새 아내⟩의 후반부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얼음은 환상적으로 형태를 바꾸고 모래의 경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뼈는 흙이 되고 흙은 뼈가 된다. 그처럼 동물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새들도 인간의 모습을 한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에 마법이 살아 있다. 이러한 시절 어느 날 상아 사냥꾼이 한 무리의 바닷새가 여자로 변신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얀 가죽옷을 입은 사냥꾼은 하얀 눈 위를 살금살금 기어서 갑자기 여자들을 덮쳤다. 힘센 손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여자를 움켜잡자 다른 여자들은 다시 새로 변신해서 이상야릇한 비명을 길게 내지르면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소녀는 초승달처럼 날씬하고 하얗고, 눈은 야생 갈매기처럼 검고 부드러웠다. 소녀가 몸부림치지 않고 울기만 하자 사냥꾼은 연민을 느꼈다. 따스한 눈 오두막으로 소녀를 데려가서 부드러운 가죽옷을 입히고 큰 물고기의 심장을 먹였다. 연민은 사랑으로 변해서 소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사냥꾼은 소녀와 두 해 동안 함께 살았다. 그물과 활을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냥꾼은 물고기와 고기를 잡아서 아내에게 먹였다. 하지만 자신이 집에 없을 때는 오두막의 문을 잠가두었다. 혹시나 아내가 다시 새로 변해서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내는 두 아이를 낳았지만, 사냥꾼의 마음속에는 꿈결처럼 두려움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아내는 사냥할 때 함께 따라갔고, 활을 놀라울 정도로 잘 다루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에게 야생 갈매기는 사냥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그들은 살았고 사랑했다. 아이들이 강인하고 민첩해질 때까지.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이 모두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 수많은 새들이 죽었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아이들아, 어서 빨리 깃털을 좀 가져오렴!” 아이들이 두 손에 가득 깃털을 가져오자 여자는 아이들의 팔과 자신의 어깨에 깃털을 얹어 놓고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날아라! 너희들은 새 종족이다! 너희들은 바람의 아이들이다!” 그러자 바로 옷들이 벗겨져 떨어졌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야생 갈매기로 변신해서 얼음같이 차고 빛나는 허공 속으로 날아올라서, 하늘을 향해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리면서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그들은 울고 있는 아버지 위에서 나선형을 세 번 그리면서, 반짝이는 빙산 꼭대기 위로 날아오른 다음 날카로운 비명을 세 번 질렀다. 그리곤 갑자기 머나먼 남쪽을 향해서 미끄러지듯이 휭 날아가 버렸다. 영원히.



헌이 ⟨새 아내⟩의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는, 어느 그린란드 에스키모 신화 개론서에 수록된 길이가 고작 10줄 정도인 설화 개요이다[2]. 헌이 대폭 개작한 ⟨새 아내⟩는 ⟨샘 처녀⟩와 인물 묘사와 서사 구조가 비슷하다. ⟨새 아내⟩에 등장하는 '갈매기 소녀’의 모습은 ‘샘 처녀’와 마찬가지로 하얗고 날씬한 초승달의 모습을 닮았다. 또한, 갈매기 소녀의 남편은 ‘샘 처녀’의 남편처럼 아내가 자신의 나라로 달아날까 봐 두려워한다. ‘샘 처녀’의 남편이 샘 입구를 산호 덩어리로 막아 놓았듯이, 갈매기 소녀의 남편은 아내를 오두막에 가두어 놓는다. 갈매기 소녀는 남편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았지만, ‘샘 처녀’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아이들을 자신의 나라로 데려간다. 두 주인공의 차이점은, ‘샘 처녀’는 갓난 아들과 헤어졌다가 훗날 다시 나타나지만, ‘갈매기 아내’는 인간 세계에서 줄곧 머물면서 아이들이 성장해서 날갯짓을 힘차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는 점이다. ‘갈매기 아내’는 기다리던 때가 왔을 때 성장한 아이들에게 “날아라! 너희들은 새 종족이다! 너희들은 바람의 아이들이다!”라고 외친다. 이류교혼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아버지의 종족이 아니라 어머니의 종족에 속한다고 말한 것이다. 헌은 1890년에 친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영혼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며 “우리는 어머니의 자식들이다.”라고 말한다[3].


나의 영혼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선한 면과 네가 지니고 있을 더욱 선한 면은 우리가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는 유색인종의 혼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혐오하며 아름다운 것과 참된 것을 찬미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능력과 예술에 대한 감수성, 미천한 것일지언정 내가 성취한 것들, 그리고 호소력을 지닌 우리들의 커다란 눈조차도 모두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자식들이다. 적어도 타산적인 재능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과 힘을 지닌 고상한 인간이 되게 한 것은 어머니이다.


헌이 쓴 이류교혼담은 그 이야기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인류의 보편적인 삶이 지닌 비극성, 특히 남자의 이기적인 사랑과 욕망으로 이루어진 그릇된 결혼의 비극성을 잘 담고 있다. 헌이 쓴 대부분의 이류교혼담은 남녀의 이별로 끝난다. 인도 신화를 다시 쓴 ⟨바카왈리⟩에서만 이류(異類) 간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천상 여인과 인간 남자는 행복한 결합을 하기 위해 지옥을 넘나드는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른다. ⟨샘 처녀⟩와 ⟨새 아내⟩는, ⟨악몽⟩ 전설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일방적인 강압으로 이루어진 약탈혼의 비극성을 잘 보여준다. 인간 남자는 ⟨샘 처녀⟩에서는 그물로 이계 여자를 포획하고, ⟨새 아내⟩에서는 여자로 변신한 갈매기를 강압적으로 붙잡는다. 두 이류 남녀의 만남은 시작뿐만 아니라 과정도 잘못되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통로를 차단하거나 가두어 놓는다. 게다가, 세월이 흘러서 아내가 여러 명의 아이를 낳자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방심한다.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남편이 금기를 파기하거나 조언을 듣지 않았을 때 이계 아내는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1] William W. Gill, Myths and Songs of the South Pacific, 1876, 265-267.

[2] Mythologie & légendes des Esquimaux du Groenland. By Morillot, Louis, 1874, 48면.

[3] 오찬욱, ⟨라프카디오 헤른의 일본 괴담과 아일랜드⟩, ⟪외국문학연구⟫ 37, 232면에서 간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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