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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Apr 04. 2022

13. ⟨구미호⟩와 ⟨설녀⟩의 같음과 다름 2

인간화 욕망과 모성애

  한국 옛이야기를 외국 옛이야기와 비교할 때, 마음속에 절로 싹트는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 옛이야기가 지닌 한국적인 특징은 과연 무엇인가?’이다. ⟨구미호⟩와 ⟨설녀⟩를 비교한 노성환은 한국적인 특수성을 ‘인간화 욕망’이라는 모티프에서 찾는다. 그는 ⟨전설의 고향: 구미호⟩ 이후에 새롭게 제작된 수많은 구미호 드라마는 ‘인간이 되고자 갈망하는 구미호’라는 불변하는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 유전인자는 “1977년 방송작가들이 일본의 고이즈미 야쿠모의 ⟪괴담⟫ 중 ⟨설녀⟩를 한국의 구미호로 둔갑시켜 수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말한다[1]. 노성환이 ‘인간화 욕망’ 모티프를 한국 유전인자로 본 것은, 이 모티프가 한국의 여우 설화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단군신화와 곰 처녀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2]. 


하지만, 과연  ‘구미호의 인간화 욕망’이란 모티프를 한국 유전인자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1960년대 말에 한일합작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요괴인간⟫ 시리즈는 그 당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요괴’는 당시의 어른과 아이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존재였다. 나 역시 이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해서 10여 년 전에 DVD로 출시했을 때 소장용으로 사두었다. 그래서인지, 괴물의 '인간화 욕망'하면 자연스럽게 “어둠에 숨어서 사는 /우리들은 요괴인간들이다/ 숨어서 살아가는 요괴인간/ 사람도 짐승도 아니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요괴인간⟫의 주제가를 떠올리게 된다. ⟨전설의 고향: 구미호⟩의 작가와 제작진들이 그 당시의 인기 애니메이션이었던 ⟪요괴인간⟫이 아니라 단군신화 속의 웅녀나 잘 알려지지 않은 한두 편의 곰 처녀 설화의 영향을 받아 '인간화 욕망'이라는 모티프를 창안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전설의 고향: 구미호⟩에 등장하는 ‘인간화 욕망’이라는 모티프가 과연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모티프가 임충의 ⟨구미호⟩ 와 헌의 ⟨설녀⟩의 차이점을 나타내는 것임은 분명하다. 구미호가 칠복이를 찾아간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반면에, 설녀가 미노키치에게 접근한 것은 그의 젊음과 미모에 반했기 때문이다. ⟨설녀⟩의 들머리에서, 설녀는 두려움에 떠는 미노키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너도 저 인간처럼 해주려고 했는데, 불쌍해 보이는구나. 너는 너무도 어리고...예쁜 소년, 미노키치야, 지금 당장 너를 해치지는 않을게. 그러나 네가 오늘 밤 본 것을 누구에게라도 말한다면, 네 어머니에게라도 말한다면... 나는 알 수 있어. 그럼, 널 죽일 거야.”라고 속삭였다. 설녀는, 구미호와는 달리, 애당초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 자체를 지니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임충의 ⟨구미호⟩가 보여주는 가장 한국적인 특징은 ‘인간화 욕망’이 아니라 구미호가 지닌 강렬한 모성애가 아닐까 싶다. 설녀의 모성애는 구미호의 모성애처럼 강렬하지 않다. 구미호는 인간계를 떠날 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데리고 떠나지만, 설녀는 아이들을 남편 곁에 남겨두고 떠난다. 설녀는 남편을 떠날 때, “자고 있는 아이들만 없었더라면, 지금 당장 당신을 죽였을 거야. 앞으로 아이들을 아주 잘 보살피도록 해. 아이들이 당신에 대해 불평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라고 협박하지만, 아이들을 데려가지는 않는다. 


내가 구미호의 모성애를 한국적인 특징으로 본 근거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 때문이다. 한국 선녀의 모성애는 외국의 백조 처녀와 비교할 때, 매우 두드러질 정도로 강렬하다.  손진태의 ⟪조선민담집⟫에 실린 방정환이 구연한 ⟨수탉 설화⟩를 보면, 날개옷을 찾은 선녀는 “두 아이를 양팔에 하나씩 끼고, 막내는 다리 사이에 끼워 천장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3]. 이때 선녀가 데리고 간 장남은 경성에서 과거를 보고 급제했을 정도로 장성한 아들이다. 외국의 ⟨백조 처녀⟩ 설화에서는 많은 주인공이 아이들을 지상에 남겨둔 채 홀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몽골 설화의 경우, 백조 처녀가 날개옷을 입고 날아오르려고 할 때, 솥과 국자를 들고 있던 딸아이가 검댕이 묻은 손으로 어머니의 다리를 붙잡는다. 하지만 백조 처녀는 딸의 손을 뿌리치면서 남편과 자식들을 향해서 “나는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지어다.”[4]라고 말하고는 게르의 천창을 통해 홀로 날아간다. 일본에서는 선녀가 아이들을 천상계로 데려가는 이야기 못지않게, 지상에 남겨두는 이야기도 많이 전승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민담이 아니라 주로 어느 가문의 시조모에 얽힌 전설로 전승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녀는 거의 모든 각편에서 아이들을 지상에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다 데려간다. 


 ‘아이를 셋 또는 넷을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주지 말라’는 금기 모티프는 한국 설화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모티프이다. 세계 여러 지역의 ⟨백조 처녀⟩ 유형 설화를 살펴보아도 그러한 금기 모티프를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이  금기 모티프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이들을 버리고 천상에 갈 수 없는 모성애를 지녔다.’라는 생각이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은 집단에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임충이 창작한 ⟨전설의 고향: 구미호⟩가 우리의 전통 설화로 쉽게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모성애 코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 헌의 ⟨설녀⟩처럼 구미호가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면, ⟨전설의 고향: 구미호⟩가 그렇게 쉽사리 한국인의 마음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1] 노성환, ⟨한국의 구미호와 일본의 설녀⟩, ⟪일어일문학⟫ 72집, 2016, 290면

[2] 앞글, 280면

[3] 손진태, 최인학 역편 ⟪조선설화집⟫, 민속원 2009, 95면

[4] 체렌소드놈, 이평래 옮김, ⟪몽골 민간 신화⟫, 대원사 2001, 230면.



https://youtu.be/BZH3DCw1dGc

1969년에 방영되었던 ⟪요괴인간⟫ 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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