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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Apr 14. 2022

15. 여정을 마치면서

⟨구미호⟩의 양면성과 창작옛이야기의 힘

1980년대 이후에 발간된 ⟪한국구비문학대계⟫와 임석재 선생의 ⟪한국구전설화⟫ 총서 덕분에, 우리는 풍성한 구전설화 자료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채록 자료를 접한 많은 어린이책 작가는 우리 고유의 구전설화를 새롭게 ‘다시 쓴’ 이야기책과 그림책을 출간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서정오는 구전설화 ‘다시 쓰기’뿐만 아니라 이론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한 작가이다. 설화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서정오는 ‘옛이야기 새로 쓰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런 꼴의 이야기는 옛이야기라기보다 지은 이야기(창작동화)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겉모양이 옛이야기를 닮았기 때문에 함께 넣었다. 옛이야기를 함부로 새로 쓰지 말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꼴의 이야기로는 도저히 생각을 나타내기 어려울 때만 써야 할 것이다.”(53면) 라고 주장하였다.[1] ‘새로 쓰기’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자칫 잘못하면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옛이야기 ‘새로 쓰기’는 옛이야기 ‘다시 쓰기’ 못지않게 중요하다. 전통 설화를 대하는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의 시각은 다르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을 풍부하게 하고 자국의 설화를 외국에 알리는 데 이바지하였다. 안데르센처럼 창작옛이야기라는 양탄자를 짜려는 작가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자신에게 필요한 실이 한국산인지 유럽산인지 또는 옛것인지 새것인지”가 아니라 “옛것보다 더 나은 새것을 만들 수 있는가”이다. 작가의 머릿속에 새롭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있다면, 그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적합한 실과 천을 고를 때 원산지가 어디인지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공간과 시간의 칸막이 속에 가두어 놓으면, 환상성과 문학성이 뛰어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창작옛이야기로서, ⟨전설의 고향: 구미호⟩는 미덕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임충 작가가 서사가 단순한 ⟨구미호⟩와 ⟨여우구슬⟩ 설화를 ⟨지네 각시⟩나 ⟨선녀와 나무꾼⟩에 비교할 만한 이류교혼담으로 변화시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임충은 강렬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괴물 여성에게 현실적인 삶과 꿈을 부여해서 관객이 쉽사리 감정 이입할 수 있게 하였다. 구미호를 팜므파탈 형의 요부나 인간을 살해하는 끔찍한 괴물이 아니라 인간과 똑같은 감정과 아픔과 소망을 지닌 존재로 변화시켰다. 죽음의 여신과 다름없던 구미호가 주변 현실 속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모성애 짙은 어머니, 남편의 도박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내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 것은 과거의 구미호나 여우 설화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시도이다. 


하지만 임충이 옛것보다 더 나은 새것을 창출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채록된 ⟨여산신과 용왕⟩이나 ⟨금강산의 괴호⟩에 등장하는, 마성을 지닌 ‘천년 묵은 여우’는 임충의 구미호보다 훨씬 더 활달하고 진취적인 캐릭터이다. ‘천년 묵은 여우’ 또는 ‘괴호’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고, 용왕과 천신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력한 존재이다. 또한, 마법과 술책에 능하지만,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마음 씀씀이도 졸렬하지 않다. 


반면에, 임충이 창작한 구미호는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나약한 아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구미호는 남편의 폭력에 굴복해서 무덤 속을 파헤쳐서 망자의 구슬을 훔치고, 무사의 화살에 쉽사리 상처 입고, 신의를 지키지 않은 남편을 정 때문에 벌하지 못한다. ⟨전설의 고향: 구미호⟩가 방영된 이후, 수많은 구미호 물이 확대 재생산된 것은, 구미호가 지닌 양면성 때문일 게다. 구미호는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여성 캐릭터이면서, 전통적인 여인의 삶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다. 구미호의 이러한 양면성이 후속 작가들의 마음속에 다시 쓰거나 고쳐 쓰고 싶은 욕구를 불어넣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창작옛이야기를 쓰려는 작가들은 20세기 전반기에 채록된 구전설화에 많은 관심을 지닐 필요가 있다. 문맹률이 높아서 이야기가 주로 입말로 전승되던 시대를 살았던 옛 이야기꾼들은 민족 또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울림을 줄 정도로 보편성이 크고, 줄거리가 탄탄하면서, 세계관이 진취적인 설화들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작가의 손길을 거치면 대중의 마음속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전 세계 설화 학자들의 노력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훌륭한 구전설화가 세계 각국에서 채록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인에게 친숙한 옛이야기는, 안타깝게도 구전설화가 아니라, 뻬로, 그림 형제, 안데르센, 제이콥스와 같은 지식인 작가가 고쳐 쓰거나 새로 쓴 옛이야기들이다. 구전설화는 그 매력과 가치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동화, 그림책, 애니메이션 따위의 다양한 매체로 변용되어 대중에게 유통되지 않는다면, 소수 설화 연구자들의 전유물로 남게 된다. 


임충의 ⟨구미호⟩는 우리 옛사람들이 전승한 구미호 설화와는 다르지만,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아는 구미호 전설이 되었다.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도 일본의 옛사람들이 남긴 ⟨설녀⟩와는 다르지만, 오늘날 일본인에게 친숙한 요괴 이야기가 되었다. 이 두 작품은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현장에서 각각 구미호 설화와 설녀 설화의 표준 텍스트로 받아들여진다. 이 두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차용한 많은 작품이 다양한 매체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인터넷의 바다에는 새로운 옛이야기를 창작하려는 작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옛이야기 창고가 여기저기 섬처럼 존재한다. ⟨신데렐라⟩ ⟨백조 처녀⟩ ⟨큐피드와 프시케⟩ ⟨손 없는 색시⟩ ⟨구복 여행⟩ ⟨생명수⟩ 따위의 유형처럼, 전 세계에는 유사한 서사를 지닌 이야기들이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광포(廣布) 설화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초월해서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강한 생명력을 지닌 이야기들이어서, 판타지와 창작옛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작가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된다. ‘미래의 안데르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구미호와 설녀와 함께 한 여정을 마친다. 




[1] 서정오, ⟪옛이야기 들려주기⟫, 보리, 1995, 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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