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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Dec 04. 2021

사족: 구미호가 아니라 금강산이 표지에 등장한 사연

브런치에 내가 쓰는 글들이 길고 건조해서 독자들이 읽기 지루할 듯싶어, 평소 좋은 그림 파일을 구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브런치에 ⟨구미호와 설녀⟩를 연재하면서, 민화집과 여러 인터넷 박물관 사이트를 검색해서 구미호 또는 여우에 관한 우리 옛 그림을 찾아보았다. 사냥 그림이나 불경 그림에서 작게 그려진 여우 형상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구미호 그림은 단 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구미호에 관한 옛 그림은 산해경에 삽입된 그림 말고는 거의 대부분 일본 화가들이 그린 우키요에(浮世絵)였다. 일본 화가들은 각종 요괴 및 구미호 그림을 무수히 많이 남겼는데, 한국 화가들은 구미호나 도깨비와 같은 요괴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는 구미호 설화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구미호가 등장하는 옛 소설은 적지 않다. 옥란기연 삼한습유 임씨삼대록 장인걸전 서화담전 이화전 전우치전 기설과 같은 고소설에 구미호가 등장한다.  이러한 소설들에 구미호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이 구미호를 그릴만도 한데, 구미호 그림이 없으니 이상스러운 일이다. 이는 비단 구미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구전 현장에서 도깨비 설화는 무수히 많이 채록되었지만, 도깨비가 그려진 옛 그림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에서 그림책 작가들이 그린  뿔 달린 도깨비는 한국 도깨비가 아니고 일본의 오니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구미호 그림을 찾다 보니, 도깨비를 오니처럼 그린 그림책 작가들의 고충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림책 작가들은 도깨비를 그릴 때 아마도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원 다닐 때, 서양 예술사가 E.H. 곰브리치가 쓴 ⟨장난감말에 관한 명상—장난감 말 또는 예술형식의 기원에 관한 명상⟩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그림은 자연보다는 다른 그림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세상을 참신하게 볼 것 같은 순진한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따위의 멋진 구절은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곰브리치의 에세이가 실린 ⟪문학예술과 사회상황⟫이라는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정가가 2800원이었던 1979년에 갱지로 발간된 책은 종이가 누렇게 변하고 너무 낡아 곧 바스러질 것만 같아 작년에 전자책으로 만들어 두었다.


모든 예술은〈형상의 창조〉이며 〈모든 형상창조⟩의 근원은 대치물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환상주의〉 즉 자연주의 계열의 예술가조차 사람이 만든, 인습에 맞도록 ⟨재구성된⟩ 모습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가 ⟨어떤 물체의 겉모습을 모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모습을 구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이 틀린 얘기라면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법⟩이나 ⟨선박을 그리는 법⟩에 관한 그 숱한 책들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뵐플린 Heinrich Wöfflin (1864-1945 스위스의 예술사가-역주)이 일찌기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그림은 자연에서보다 다른 그림들에게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중략)  그 까닭은 ⟨맑고 깨끗한 눈 innocent eye⟩에는 세상의 모습이 새롭게 비칠 것이라는 많은 예술가들의 소망 및 믿음과는 반대로, ⟨맑고 깨끗한 눈⟩에는 어쩌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데 있을 것 같다.  그 눈은 뒤죽박죽 혼잡스럽게 얽힌 빛깔과 모양들의 고통스러운 충격 앞에서 쓰리고 아린 통증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예술가들에게는 기본적인 생김새에 관한 재래식 용어들이 하나의 출발점으로, 이론 정립에 필요한 한 가지 축으로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영무 번역, ⟪문학예술과 사회상황⟫ 106면)


곰브리치의 말이 맞다면, 한국 그림책 작가들에게는 구미호나 도깨비를 그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같다. 그들에게는 구미호나 도깨비와 같은 괴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쳐   있는 우리  그림이 없다. 아마도 도깨비를 그린 많은 그림책 작가일본의 오니 그림을 참조한 것은 도깨비에 관한 우리  그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나는 도깨비에 관한  그림이 없기에 그림책 작가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도깨비를 자유롭게 그릴  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구미호가 그려진 우리 옛 그림이 없다는 사실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내게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구미호 그림이 모두 일본 것이다 보니, 브런치 글의 표지로 쓸 그림이 마땅치 않았다.  한국의 구미호 설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일본 구미호 그림을 마냥 갖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브런치 글의 표지를 공백으로 놓아둘 수도 없었다.  결국 한국 구미호가 사는 곳이 대부분 금강산이어서, 구미호 그림 대신에 금강산 그림을 표지로 쓰게 되었다. 설화 속에 용왕 또는 용왕의 딸이 등장하기에 금강산과 바다가 동시에 그려진 그림을 택했다.  독자들이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보면서 깊은 산속 어딘가에 구미호가 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바랄 따름이다.



표지 그림은 겸재 정선이 그린 해산정,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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