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카디오 헌은 ⟪괴담⟫의 서문에서 소설집에 실린 거의 모든 이야기를 일본 문헌설화집에서 빌려왔지만,[1] ⟨설녀⟩는 무사시국에 사는 어떤 농부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설녀⟩를 연구한 일본과 국내의 일본문학 연구자들은 문헌이나 입말로 전승되는 전통설화 ⟨설녀⟩와 헌의 ⟨설녀⟩는 다르다고 보았다. ⟨설녀⟩를 연구한 성혜경은 “일본의 호설(豪雪)지대에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雪女像을 일본인이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지금의 이야기로 최초로 완성시킨 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서양인 헌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2]. 일본인 연구자 요코 마키노는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저본이 된 텍스트를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3]. 요괴 전승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민속학자 고마쓰 가즈히코도 ‘인간의 남자와 정을 통하는 타입의 설녀’ 이야기는 헌의 ⟨설녀⟩가 최초일 거라고 말한다 [4]. 이러한 주장은 현재까지 ⟨설녀⟩를 연구한 일본 연구자와 민속학자들에게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라프카디오 헌이 창작한 ⟨설녀⟩와 일본에서 문헌과 입말로 전승된 전통 설화 ⟨설녀⟩를 비교해보면 두 이야기의 차이점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설화학자 세키 게이고가 영어와 일본어로 편찬한 구전설화집에 전문을 수록한 ⟨설녀⟩ 설화는 서사가 짧은 단편이다. 세키 게이고(Seki Keigo)가 영어 일본설화집(Folktales of Japa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3)에 수록한, 아오모리 현에서 채록한 ⟨눈 아내⟩ (The Snow Wife)는 줄거리가 매우 간단하다.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날, 어떤 총각의 집 문 앞에 젊고 아름다운 처녀가 쓰러져 있다. 총각은 처녀를 아내로 삼아 행복하게 산다. 봄이 오고 날씨가 따스해지자 아내는 나날이 쇠약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친구를 초대해서 술과 음식을 먹다가 아내를 부른다. 아내가 대답이 없어서 부엌에 가보니 아궁이 앞에 생긴 물웅덩이에 옷이 달랑 놓여 있었다.
세키 게이고가 ⟪일본설화집⟫(日本昔話集成:第3部 笑話2)에 수록한 ‘설녀’ 설화에는 ‘눈 아내’ 대신에 ‘눈 딸’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서사 내용은 앞서 살펴본 영역본 ⟨눈 아내⟩와 비슷하다. 눈보라가 매서운 어느 추운 겨울날 아름다운 설녀가 아이를 안고 나타나 딸을 자기 대신 키워달라고 노부부에게 부탁하고 눈가루되어서 사라진다. 노부부의 양녀가 된 아이는 희고 예뻤지만 목욕하기를 싫어한다. 노부부는 아이를 억지로 목욕탕에 넣어 놓고 목욕이 끝나길 기다렸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노부부가 불러도 아이가 대답하지 않아서 목욕탕에 들어가 보았더니 아이는 이미 몸이 녹아버려서 형체를 찾을 수 없었다.
이처럼, 전통적인 ⟨설녀⟩ 설화는 제대로 된 이류교혼담[5]이라고 보기에는 서사가 지나치게 단편적이어서, 세키 게이고는 본격설화(本格昔話)가 아닌 소화(笑話)로 분류한다. 이러한 소화(笑話) 이외에도, 설녀가 공포감을 주는 요괴로 등장하는 괴담이 일본의 다양한 지역에서 전승된다. 설녀가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날에 나타나서 차가운 숨결로 사람들을 동사시키는 이야기, 아이들의 간을 빼어 먹는 이야기, 사람들이 길을 잃도록 만들어 얼어 죽게 하는 이야기, 아이를 안고 서 있다가 행인에게 아이를 안아 달라고 해서 부탁을 들어준 행인이 점점 무거워지는 아기 때문에 눈에 파묻혀서 죽는 이야기, 설녀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아이를 잡아먹거나 또는 아이를 납치하는 이야기 따위가 일본의 다양한 지역에서 전승된다[6].
헌의 ⟨설녀⟩ 를 연구한 신지숙에 따르면,[7] 일본의 민속학자들은 일본의 설녀 전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눈다. “첫째는 눈의 정령, 화신이다. 눈이 내린 후나 눈보라 치는 밤에 주로 흰 모습의 여자로 나타나며 때때로 직시하면 죽는다는 공포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자연의 위협에 대한 소박한 외경심이 담긴 설신 신앙이 변화된 것이다. 둘째는 눈보라 속에 죽은 혼령이 등장하는 유령이야기 풍의 것, 셋째 의외로 많은 것이 우스운 이야기로 바뀐 것. 목욕을 싫어하는 며느리를 억지로 목욕탕에 들여보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와서 가보니 거품만 떠 있었다, 따위의 이야기이다.”(252면). 이 세 부류 가운데서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가 지닌 이미지는 첫 번째 부류의 설녀와 가장 가깝다. 첫 번째 부류의 이야기들은 기록 시기가 무로마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일찍부터 전승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의 렌가시 소기법사(宗紙法師)가 편찬한 ⟪소기쇼코쿠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설녀는 첫번째 부류에 속한다.
어느 새벽 용변을 위해 머리맡에 가까운 미닫이문을 열고 동쪽을 보니 6간쯤 떨어진 대나무 숲 북쪽 끝에 수상한 여자가 혼자 서 있다. 키가 한 길쯤 될 것 같다. 얼굴을 비롯하여 피부가 투명할 정도로 흰데 하얀 홑옷을 입고 있다. 아직 이 지역에서는 본 적 없는 결이 곱고 윤이 나는 비단이다. 한 올 한 올이 찬란하게 주위를 비추고 몸을 분명하게 보이게 한다. 위엄 있는 용모, 서왕모가 도림에 나타난 듯, 가구야히메가 대나무 안에 노는 듯하다. 얼굴로 나이를 짐작해보면 스무 살이 안 됐을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흰 무명 오리를 잘라 늘어뜨린 듯 새하얘서 이상하다. 누군지 이름을 물어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니 여자는 조용히 뜰을 걸어간다. 어찌하려는 건지 지켜보려고 하니 모습이 사라져 없어졌다. 여광이 잠시 일대를 비추고 다시 어두워졌다. 그 후에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은 후 이 일을 이야기하니 그것은 눈의 정령, 속칭 설녀라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신지숙의 글, 252-253면에서 간접 인용).
이 글에 등장하는 설녀는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하지만 소기법사의 이야기는 서사가 없는 그림 같은 산문이어서, 이류교혼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와는 많이 다르다. 헌의 ⟨설녀⟩는 서사의 짜임새가 탄탄하고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닌 이야기이다. 우선 논의를 펼치기 전에 라프카디오 헌이 지은 ⟨설녀⟩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해보기로 한다.
무사시국의 한 마을에 모사쿠(茂作)와 미노키치(巳之吉)라는 나무꾼이 살았다. 사건이 일어날 무렵 모사쿠는 노인이고, 일손을 돕던 미노키치는 18세의 젊은이였다. 두 사람은 어느 추운 겨울날 산속에서 나무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심한 눈보라를 만났다. 두 사람은 사공의 오두막을 빌려서 잠시 쉬면서 눈보라가 그치길 기다렸다. 나이 많은 모사쿠는 금방 잠이 들었고, 미노키치는 눈보라 소리를 들으면서 늦도록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잠이 든 미노키치는 얼굴에 불어오는 눈 때문에 잠이 깼다. 오두막에 쌓인 눈에 반사된 빛 속에서 온몸을 흰 옷으로 감싼 어떤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모사쿠 위에 몸을 굽히고 입김을 내뿜었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서 미노키치 쪽으로 몸을 굽혔다. 미노키치는 몸을 숙이면서 다가오는 여자의 하얀 얼굴이 무척 아름답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여자가 미소 지으면서 속삭였다. “저 남자처럼 해주려고 했어. 그런데 너는 왠지 불쌍해 보이는구나. 너무 어려서……. 예쁜 소년 미노키치야, 지금은 너를 해치지 않을게. 하지만 네가 오늘 밤에 보았던 것을 그 누구한테 말한다면, 네 어머니한테라도 말한다면, 너를 죽일 거야…. 명심해라.” 말을 마치자마자 여자가 사라져 버렸다. 미노키치는 꿈결에 문가에 쌓인 눈에 반사된 어슴푸레한 빛을 하얀 여자의 모습이라고 착각했을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사쿠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모사쿠는 온몸이 얼음덩어리가 된 채 죽어 있었다.
눈보라가 끝나고 사공이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모사쿠의 시체 옆에는 미노키치가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그날 이후 미노키치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는 모사쿠의 죽음에 공포를 느꼈지만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을 보았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미노키치는 몸이 회복되자 다시 혼자서 숲속으로 가서 아침부터 밤늦도록 나무를 하였고, 어머니는 나무를 파는 일을 도왔다.
그다음 해 겨울 어느 날 저녁, 미노키치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오유키(お雪)라는 여자를 만났다. 부모를 잃은 오유키는 하녀 일 자리라도 얻을까 싶어서 에도에 있는 친척한테 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주고받다가 둘 다 미혼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믿음과 호감을 지니게 되었다. 미노키치의 집에서 잠시 쉬기로 한 오유키는 미노키치 어머니의 권유로 에도에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다가 며느리가 되었다.
오유키는 훌륭한 며느리여서 미노키치의 어머니는 죽으면서도 며느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유키는 하얀 피부를 지닌 예쁜 아들 딸을 열명이나 낳았다. 오유키는 열 명의 아이들을 낳았지만, 여느 시골 여인들이 쉽게 늙는 것과는 달리, 처음 마을에 온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젊었다.
어느 날 밤, 미노키치는 아이들을 재우고 등잔불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열여덟 살 때 자신이 보았던 오유키를 빼닮은 아름답고 하얀 여인에 대해서 말했다. 그 끔찍한 밤에 사공의 오두막에서 하얀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속삭이던 말과 모사쿠의 죽음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하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때가 당신처럼 아름다운 존재를 본 유일한 순간이었어.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어. 몹시 무섭더군. 너무도 하얀…..…꿈이었는지 아니면 눈의 여인을 본 건지….…” 오유키는 갑자기 바느질감을 던지면서, 미노키치의 얼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는 나야. 오유키가 그 여자야. 내가 당신에게 한 마디라도 그때 일을 입밖에 내면 죽인다고 말했을 텐데…. 자고 있는 아이들만 없었더라면, 지금 당장 당신을 죽였을 거야. 앞으로 아이들을 아주 잘 보살피도록 해. 아이들이 당신에 대해 불평이라도 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부르짖는 유키의 목소리가 바람의 외침처럼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반짝이는 하얀 안개로 변해서 지붕의 용마루 쪽으로 올라갔다가 연기 구멍을 통해 사라졌다.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이러한 줄거리를 지닌 헌의 ⟨설녀⟩는 눈의 정령과 인간 남자의 만남, 사랑, 결혼, 이별을 다룬 이류교혼담이다. 이계에 속한 여성이 자신과 인연이 있는 인간 남자의 집에 와서 아내가 되어 한동안 잘 지내다가 남편이 금기를 지키기 못하자 멀리 떠난다는 내용은 일본의 ⟨학 아내⟩, 한국의 ⟨작제건⟩ 신화, 서양의 ⟨멜루진⟩ 전설과 같은 이류교혼담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헌의 ⟨설녀⟩는 전형적인 이류교혼담과는 다른 특징을 지녔다. 공포미를 지닌 괴물 여성이 인간 남자에게 반해서 살해 의지를 접고 그에게 금기를 부여한 후에 아내가 된다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의 전통 설화에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설정이다. 여성이 이류로 설정된 이류교혼담에서 결혼의 보편적인 형태는 남자가 이계 여자의 옷을 빼앗거나 납치하는 약탈혼이거나 동물 여성이 목숨을 구해준 남자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아내가 되는 보은형 결혼이다. 일본의 ⟨날개옷⟩ 설화는 약탈혼을 다루고 있고, ⟨학 아내⟩(두루미 아내)는 보은형 결혼의 비극성을 담고 있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이류교혼담으로서 헌의 ⟨설녀⟩가 보여주는 특이한 설정은 서양에서 유입된 요소들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추정한다.

[1] 라프카디오 헌, ⟪괴담⟫, 심정명 옮김, 혜윰 2017
[2] 성혜경 (2009). ⟨라프카디오 헌과 일본문화-⟨설녀⟩를 중심으로⟩, ⟪일본연구⟫ 26, 197-217. 인용문은 199면.
[3] Yoko Makino, Lafcadio Hearn's "Yuki-Onna" and Baudelaire's "Les Bienfaits de la Lune,” Comparative Literature Studies, Vol. 28, No. 3, East-West Issue (1991), pp. 234-244. 234면 참조.
[4] 신지숙, ⟨라후카디오 한 ⟨雪 女⟩와 마쓰타니 미요코(松谷みよ子 ) ⟨雪 女⟩ 수용으로 본 문학텍스트 수용과 사회문화적 토양의 관계⟩ ⟪일본연구⟫ 제65, 2015, 247-266. 255면.
[5] ⟪한국민속문화사전:설화⟫에서는 이류교혼화소를 “사람과 ‘사람 아닌 다른 류(類)’와 성 관계를 맺는 이야기 화소”로 정의한다. 또한 ⟪우리말샘⟫ 사전에서는 이류교혼담(異類交婚談)을 사람이 식물이나 동물과 교합하여 관계를 맺는 내용의 설화로 정의한다. 일문학자들은 이류혼인담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우리말로는 이류교혼담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6] 박희영, ⟨동아시아 괴기 문화 속의 요괴 전승과 그 흐름‒ 일본 요괴, 설녀(雪女)의 문화사를 중심으로‒⟩ ⟪일본근대학연구⟫ 40, 143-162. 148면.
[7] 신지숙, ⟨라후카디오 한 ⟨雪 女⟩와 마쓰타니 미요코(松谷みよ子 ) ⟨雪 女⟩ 수용으로 본 문학텍스트 수용과 사회문화적 토양의 관계⟩ ⟪일본연구⟫ 제65, 2015, 247-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