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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님 그만두고 세계여행

오타루, 러브레터, 지금

by helloiam Jan 01. 2025

무슨 바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비디오 가게에 자주 드나들었다. 유일하게 동기간 취미가 같았던 시절이라 동생과도 사이가 좋았다. 하루 걸러 서로 보고 싶은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왔다. 러브레터는 동생이 고른 것으로 기억한다. 그 겨울엔 우리 동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눈 덮인 마을의 무채하고 순결한 정서가 동생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오랜 일이라 얼마큼 기억이 혼재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한다.


 첫 감상이 오래지만, 긴 테이크의 시작을 여전히 비슷한 고요로 기억한다.


 하얀 눈이 날렸다. 히로코는 죽은 듯 미동이 없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억눌렀던 숨을 터트렸고 가쁘게 몰아쉬었다. 숨결은 이내 잦아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히로코는 검은 외투에서 눈을 털어 냈다. 이어 설경을 내려 걷는 삼분 남짓의 여정. 그것은 날리는 눈과 바람, 정돈된 현의 울림과 더불어 무결하리만큼 흰 고요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설국의 첫 문장을 읽고 기대한 호젓한 아름다움도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다. 낯설고 길었던 응시의 감각.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결한 흰 고요로 시작한 소식이 무해한 미소로 마칠 때, 마침 나의 날선 사춘기도 끝나려는 즈음이었다. 코밑에 난 검은 수염은 자리를 잡았고, 종일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 하나까지 위치를 고르던 과밀한 자아도 내가 아닌 것들과 균형을 맞추려 했다. 이는 거울이 아닌 다른 이에게서 나를 비추어 보려는 시도였고 사랑에 대한 정서를 마련하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겨울, 우리 집 브라운관에서 만난 편지엔 연인의 단 속삭임이 없었다. 사랑은 그리움과 설렘이 만들어 내는 풍경의 일부였고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마음이었다. 혹은 청춘의 빛깔인 듯 새하얗게 날리는 눈이었다.


오타루에 가고 싶었다.


---


 임용 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다음 걸음은 그제야 시작일 테니. 다만 확고한 밀도로, 일상을 궤도에 붙잡던 목표가 사라지니 마음을 묶어두기가 어려웠다. 도피 혹은 환기, 그 무엇이든 괜찮으니 다른 동력이 필요했다. 마침 삿포로행 비행기 티켓이 저렴했다. 엄마 나 일본 갈까. 답답하면 그렇게 해. 그 밤에 티켓을 샀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탔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쌓이는 눈은 아니었다. 삿포로에서 며칠을 보내고 오타루행 열차를 탔다. 도시가 조금씩 옅어져 모호할 때 열차는 좁고 긴 해안을 지났다. 파도가 선로를 감싼 방파제에 부딪히며 산란했다. 시리게 밀려오는 겨울이었다.


 오타루 역에 내리니 점심이 가까웠다. 역 근처, 소바 집을 찾았다. 노부부 두 분이 요리와 운영을 모두 맡고 계셨다. 언제부터 함께였을까. 잠시나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동경했다. 주문한 온면은 국물이 살짝 시큼했다. 별론가 싶었는데, 면의 분말과 튀김이 불면서 담백하고 기름진 맛이 섞이니 알맞게 되었다. 탱탱하게 분 새우도 별미였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 할머니께서 종이학과 쪽지를 담은 선물을 주셨다. 가는 사람에게 보내는 정성. 닮고 싶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어렵다.


 가게를 나와 역을 등지고 걸었다. 바다에 가까워지자 오타루 운하였다. 무역선의 짐을 시내로 옮겼다는 물길은 생각보다 좁아서 의외였다. 지금을 기준으로 그때의 선적량을 가늠한 오해인지 모르겠다. 운하 길이 끝날 즈음에 하늘에 회색빛이 돌더니 이내 굵은 우박이 무겁게 쏟아졌다. 마침 길가에 르 타오 매장이 있어 안으로 피했다. 가게는 나처럼 잠시 우박을 피하려는 사람들과, 케이크나 쿠키를 사려는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였다. 앉아 있을 자리가 없었다. 입구에서 우박이 멈추길 기다렸는데, 그럴만한 기세가 아니었다. 입구를 막고 있기 미안해서 선물할 겸 쿠키를 두 상자 샀다. 르타오 매장이야 한국에도 있으니 굳이 여기서 짐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쿠키 상자를 집고 나니 르타오 본점이 오타루에 어쩌고 홋카이도 우유가 어쩌고, 생색을 내고 싶어진다. 이만하면 밉지 않겠지. 주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곧 내리던 우박이 진눈깨비가 되었다. 거리가 조금 하얘졌다.


 거리 끝에 이르자 1902년에 지어졌다는 유명한 오르골당이 있었다. 25,000개의 오르골 컬렉션을 보유했다는데 건물 밖은 평범한 관공서 같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반짝이는 세계가 열렸다. 원목의 결이 느껴지는 내부 골조는 바닥을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렸고 기둥을 감은 전구에서 빛이 튀었다. 매대를 지날 때면 은빛 오르골에서 맑은 단선율이 흘렀는데, 아직 세상이 낯선 딸이 있다면 손잡고 보여주고 싶은 동화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건물 앞 증기 시계가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다. 한 번씩 울컥일 때마다 음도 짝지어 울렸다. 서로 잘 맞지 않아서 바보 같았다. 시계 안에서 돌아가고 있을 커다란 기계장치를 생각했다.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 같은 것들. 둔탁한 산업화의 유물. 이제 와 유치하지만 그것들이 이어져 양자의 영역까지 삶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나아진다는 건 무엇일까. 온갖 첨단이 시계 앞에서 흐르고 있었다.


 시내 관광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엇비슷한 기념품 샵은 금방 질린다. 책이나 읽어 볼 심산으로 그나마 여유로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커피가 식으면 다른 카페를 찾았다. 연이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속이 쓰렸다. 조금 이르게 예약해둔 숙소를 찾았다.


 골목 안쪽, 언덕을 두세 번 오르자 일반 가정집을 각색한 호스텔이 있었다. 입구의 여닫이문을 열자, 방향을 따라 맑은 풍경 소리가 났다.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가 데스크처럼 사용하는 식탁에서 숙소 이용 수칙을 알려주고 화장실이나, 방을 보여주었다. 아저씨가 가는 곳마다, 기저귀를 찬 웰시코기가 엉덩이를 씰룩였다. 충성스러운 엉덩이였다. 숙소는 눈이 닿는 곳마다 알맞은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저씨의 솜씨는 아닌 것 같고, 누군가 손길이 고운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짐을 던져 놓고 맥주를 한 캔 사서 거실에 앉았다. 일본 집은 온돌이 없어서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담요를 덮으려니 아저씨가 와서 난로를 켜주었다. 이내 난로 머리에서 아지랑이가 폈고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거실은 허리 높이의 책장 몇 개를 파티션처럼 두어 다른 공간과 구분하고 있었다. 진열된 책 중엔, 여행 잡지나, 한국어 책자도 몇 권 있었는데, 대부분은 만화책 시리즈였다. 새것처럼 깔끔해서 책장 사이에 앉으면 동네 서점 같았고 그중엔 아는 작품도 있어 반가웠다. 무엇보다 종이 입자의 질감이 공기 중에 퍼져 좋았다. 필름 사진의 그레인처럼, 지금을 애틋하게 만드는 질감이었다.


 텔레비전 뒤편은 오백일의 썸머 같은 DVD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모든 아날로그가 사라졌을 때, 중간 화석처럼, 진화의 경로를 알려줄 흔적들. 자랄 때 즐겨 쓰던 생활 도구들이 추억을 상기하는 단어가 되어버리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차라리 나은 공존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거실 입구 한편엔 기타와 우쿨렐레가 걸려 있었다. 매일 치는 폼은 아니었는데, 현을 살짝 튕겨보니 음이 맞았다. 역시나, 세심한 손길이었다. 거실에 앉아 담요를 덮고 전에 쓰다만 일기를 썼다. 그리고 전에 기록한 글을 읽었다. 되돌아보니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일이 많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노래를 듣다 잠들었다.


---


 아침은 소박한 가정식이었다. 미소를 푼 국이 어제부터 쓰렸던 속을 달랜다. ‘현서쿠 상은 왜 오타루에 왔어요?’ 마주 앉은 자리에서 식사를 차려준 여성분이 물었다. 숙소 살림을 도맡고 있었다. 어제 느낀 손길의 주인인 것 같았다. 러브레터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고민 않고 텐구산 전망대 아래 유리공방을 알려주었다. 영화에선 히로코가 받은 편지를 아키바에게 알리는 곳이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시작점이기도 해서 영화의 정서를 따라 하루를 열기에 좋은 장소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길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숙소를 나서자 지난밤에 그쳤던 진눈깨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쌓이지도 않을 눈. 어제부터 옷이 젖었다. 냄새가 날까 성가셨다. 시장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눈이 쌓인 학교를 지나 산 중턱 정류장에 도착했다. 눈이 녹은 시내와는 다르게 알갱이 같은 얼음이 바닥에 옅게 깔려 있었다. 정류장 맞은편이 유리공방이었다. 가는 길 왼편으로 도시와 바다가 차례로 보였다. 여름인 적 없는 겨울의 톤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크고 작은 유리 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층 건물 중 위층은 다양한 유리 세공품을 파는 샵이었고, 아래층이 영화에서 본 작업장이었다. 이층에서 일층은 반 원으로 둘러진 유리창을 통해 내려볼 수 있었다. 중년의 남자와 젊은 남자가 긴 막대기를 들고 작업장을 분주하게 오갔다.


 공방을 나오자 타고 온 버스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는 레일웨이를 탈까. 망설이다 다음으로 미뤘다. 눈이 조금 더 쌓이면 좋겠다. 여행 중에 종종 경로에 빈칸을 둘 때가 있다. 아쉬울 때도 있지만 다음을 기대하면 더 좋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어야 한다. 기사님 옆자리에 앉아 내려가는 길을 길게 촬영했다.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을 땐 사진이, 여정을 기억하고 싶을 땐 영상이 좋다. 영화처럼 담고 싶었다.


 시내로 내려와 다른 촬영지를 하나씩 찾았다. 우체국, 시청, 거리. 도시가 작아 금세 선을 이었다. 길 끝에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선 사진을 여러 장 담았다. 영화에선 우편배달부가 히로코의 편지를 싣고 오르는 곳이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지 차를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길가 전열기에 붙어 있었다. 언덕을 따라, 카메라를 메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것도 외로움을 조금은 덜어준다. 이야기는 꽤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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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이 아직 이른데, 하늘이 거뭇해지려 했다. 오타루는 해가 두어 시간 빨리 떠서 그만큼 빨리 졌다. 생체 시간도 같이 변하는지 다소 허기가 져 도시 끝자락 라멘집에 갔는데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담배를 한 대 피웠고, 서성이다 올 때 지나친 카페로 돌아갔다. 지나올 땐 몰랐는데, 가게 입구에 나무로 짠 여닫이문은 여기저기 닳아 있었다. 그마저도 쇠틀과 어긋나 힘없이 덜컥였다.


 카페 내부는 천장을 받치는 나무 골조 때문인지, 먼지 쌓인 엘피와 턴테이블 때문인지 시간이 떠나지 않고 머무는 다락방 같았다. 입구 맞은편 모퉁이, 주황빛 전등 아래서 할머니 두 분이 커피를 내리셨다. 전등에서 내리는 빛이 순했다. 중앙엔 등유를 쓰는 난로가 있었다. 어린 시절 교실에서 쓰던 모양이었다. 그때엔 적당한 교양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문득 그리웠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시는 중에 여학생 넷이 깔깔거리며 들어왔다. 내 자리를 양보하고 작은 테이블로 옮겼다. 가게에 모든 사람들이 동네 단골 같았다.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게 외로움을 조금은 덜어줄까. 조금 먼 타지인이 되었다.


 옮긴 자리에서 오늘 지나온 선을 풀었다. 영화에서 이츠키가 편지를 보냈던 빨간 우체통은 차도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는 보지 못했다. 그리워 서성이는 사람도 없었다. 고열로 쓰러진 이츠키를 엎고 간 병원은 시청이었고 열꽃이 가라앉고 안부를 묻던 병실에선 사람들이 시정 업무를 보고 있었다. 오타루는 필름과는 무관한 또 무던한 세계였다. 처음 이야기를 옮긴 이를 생각했다. 그이의 마음은 어디서 시작해서, 이 거리를 편지로 엮었을까.


 오타루에 도착해서, 맛있는 온면을 먹었고, 예쁜 오르골당에선 은빛의 선율을 들었다. 큰 소음이 있었고, 작은 속삭임이 있었다. 신호등과 횡단보도는 서른 번 정도 지나쳤고, 지나치는 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잊었다. 늘 겨울인 듯, 건물의 톤은 눈 없이도 하얬고 밤에 마신 청주는 달았다. 이제 와 그것들이 묻는다. 마음에 무엇이 비쳤는지.


 지난해, 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떠올렸다. 카이스트 졸업 연사였다. 방사선 종양학과 전문의였던 차유진 씨는 첫 환자인 아이를 하늘로 떠나보내며, 왜 현대의학이 그 아이를 살리지 못했는지 깊은 고뇌를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문의를 그만두었고 카이스트에 진학해 의공학을 연구한다. 간절한 사연이었다. 그이를 생각하니, 그 겨울, 하얀 오타루를 향했던 동경이 나의 배경에 있음을 알았다. 단 속삭임 없이 설원을 가득 메웠던 정서, 그것들은 내 곁에서 피워야 할 눈꽃이었다.


오픈할 시간에 맞춰 라멘 가게에 도착했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라멘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였다. 어쩐지 조금 모자라 공깃밥 한 공기를 더했더니 몸 구석구석이 녹아내리듯, 포만감이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달리 한 것도 없으면서 하루를 꽤 잘 산 것 같다. 방으로 돌아와 내일 떠날 짐을 정리했다. 한국으로 가져갈 쿠키 상자는 배낭 머리와 몸통 사이에 단단히 고정했다. 침대에 눕기 전엔 얇은 패딩을 걸치고, 양말도 하나 신었다. 방에 작은 난로가 있긴 하지만, 새벽이 되면 방 안에 퍼지는 한기를 이기지 못했다. 누워서 방을 둘러보니,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보였다. 정성이었다.


 다음날 숙소를 나설 때, 주인아저씨가 배웅하며 손에 귤을 하나 쥐여 주었다. 이틀 전 소바 집에서 할머니가 그랬듯, 지금 사는 법을 배우는 작별이었다. 오타루 역에서 해안을 지나는 열차를 탔고 삿포로에 도착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 돌아오니, 삿포로와 오타루에서도 보지 못했던 커다란 눈이 내렸다. 11월, 이른 폭설에 낙엽과 눈이 한 데 쌓였다. 신비로운 계절의 중첩이었다. 눈길엔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불편한 발자국이 이어졌다. 분주한 하루. 다만 그것은 또 다른 흔적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답을 품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 앞에도 눈길이 펼쳐져 있었다. 이 순간이 내게 남긴 흔적을 가만히 되짚어보았다. 낙원은 여기에 없으면 없다. 여기서 찾아가야 한다.


 지난 시험은 불합했다. 다만 엇갈린 편지가 다른 이의 고요를 깨웠듯이, 다시 길이 시작될 것을 믿는다. 희망은 힘이 세다고 했다.


‘길은 두 다리가 내는 길이기도 하지만 걷는 사람의 마음이 내는 길이기도 하다.’


박완서.


오타루 시내
선물 받은 종이학
소바
오타루 운하
오타루 운하
오르골당
숙소
웰시
숙소
숙소
숙소
숙소
숙소
숙소
숙소
숙소
버스에서
텐구산 전망대 정류장에서
버스
텐구산 유리공방
러브레터 촬영지
러브레터 촬영지 병원이었는데 실제로는 시청
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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