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현실이지만 겉모습 또한 중요하다.
세상이 이상적으로 어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고귀하고 서로 평등한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빠가 살아온 세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각자 다른 것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는다.
사람은 외모에 따라서도 다른 대우를 받는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
잘생긴 우리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것일까.
이미 가지고 태어난 외모를 바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채 태어나는 것은 삼대 고시를 합격한 채로 태어난 것과 같다는 등의 질 낮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진 감각 중에 가장 강력한 감각은 시각이다.
경우에 따라 다른 감각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시각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인간은 지난 몇만 년간 시각을 통해 일차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왔을 것이다.
시각으로 갈 길을 찾고, 시각으로 위험을 회피해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모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된다.
겉모습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는 그것을 뛰어넘어서 내면의 진정성, 능력 등을 보여주면 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큰 착각이다.
내면의 진정성과 능력을 보여주려면 그에 걸맞은 혹은 최소한 진정성을 해치지 않을 겉모습이 필요하다.
물론 포장보다 내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내실만을 믿고 포장을 등한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포장보다 내실이 더 중요하지만 포장 또한 중요하다.
포장에 신경 쓰느라 내실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포장에 내실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면 포장은 훌륭할수록 좋다.
포장이 엉망이라면 나의 내실을 내비칠 기회가 줄어든다.
심지어, 기회를 아예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외모를 가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기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남에게 상당히 다르게 비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진다.
내가 내 겉모습을 가꾸는 것은 남들이 안다.
자세히 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티가 난다.
굳이 겉모습을 방치할 필요가 있을까.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단지 멋지게 예쁘게를 꾸민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색을 찾아가며 그것을 갈고닦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외모를 가꾸는 것 또한 습관이다.
가꾸지 아니하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 그렇게 10년, 20년이 흘렀을 때 그 시간 동안 본인을 가꾼 사람과는 마치 다른 세대의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남들이 보는 그 사람의 색은 늙고 남루한 색이 될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더불어 때와 장소에 적절한 겉모습을 체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때와 장소에 적절한 포장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매너의 부재와 동일한 이야기이다.
결혼식에 아무 옷이나 입고 가는 것, 장례식장에 아무 옷이나 입고 가는 것.
물론 참석만으로도 감사한 자리이고 옛날에 비하면 점점 격식도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편하게 입고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일부러 편하게 입고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라서 그런 격식이 싫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건 내 스타일이라서 그런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는 것은 본인만의 생각이다.
내가 차린 격식에 다른 사람들은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못 갖춘 격식은 남에게 불편함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들이 느낀 그런 감정들은 또다시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나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격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