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하려 하지 마라.
사랑하는 아들아.
통 새벽잠이 없는 아들아.
너를 잠시나마 재워두고 오늘도 글을 쓴단다.
오늘 전해주고 싶은 말은 억지로 하려 하지 마라이다.
아빠도 너를 억지로 재우려 하지 않겠다.
세상에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것은 자연 과정이 진행하는 방향을 규정하는 법칙이다.
그리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조금만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상은 항상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먼지는 한 곳에 쌓여있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움직일 것이며,
라면을 끓이기 위에 물속에 넣은 라면수프는 투입한 곳에 있지 않고 물 곳곳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심지어 네가 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네 방은 점점 어지럽혀질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흘러가는 방향이 있다.
이를 사주팔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간단하게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빠는 네 행동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계획하며 실행하는 삶을 살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와서 너에게 정해진 운명대로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운명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면, 사주라는 것이 정말 과학적인 것이라면,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이 존재한다면 굳이 그것들을 거스르면서 고생하지 말고 그것들을 이용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서핑을 통해서 이야기해보자.
서핑을 하다 보면 내가 탈 파도를 잘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속도와 방향과 크기가 적절한 파도를 타야 파도를 즐길 수 있다.
애초에 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파도도 있는 것이고 타기에 딱 좋은 파도도 있는 것이다.
내가 탈 수 있는 파도를 잘 고르는 사람은 훌륭한 서퍼인 것이고,
내 그릇에 맞는 파도를 고르지 못하는 사람은 하수인 것이다.
바둑을 둘 때도, 축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경기가 진행되는 흐름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공세를 취해야 할 타이밍이 있고 웅크려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
그 타이밍을 잘 파악해서 공세를 취하면 경기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체 계속 공세만을 취한다면 반드시 패배할 것이다.
인간관계 또한 그렇다.
내가 온갖 노력을 해도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핏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핏이 맞는 사람의 차이이다.
안 되는 인간관계를 억지로 추구하는 것은 너의 정신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도 분명히 너에게 핏이 맞는 타이밍이 있고 맞지 않는 타이밍도 있다.
모든 조건이 분명하게 지금이 아니라고 가리키는데 노력과 열정, 끈기 같은 고루한 가치들만으로 밀고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세상을 거슬러보려는 시도는 분명히 중요하다.
그런 시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지금이 맞는 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시도를 해보아야 지금 흐르는 이 물살이 내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통찰을 가지고 더 중요하고 큰 일을 진행할 때, 그때를 가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험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고 모든 경험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세상을 거슬러보려는 노력도 적정선까지만이 긍정적일 것이다.
위에도 언급한 노력, 열정, 끈기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성공으로 향하는 메인 키워드는 아니다.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인 것이지 저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노력, 열정, 끈기만으로 타지 못할 파도를 타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모든 조건이 적절한 파도는 타는 데 힘이 들지 않는다.
나와 상대를, 그리고 흘러가는 양상을 잘 파악한 경기는 힘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다.
인생의 파트너를 만났다면 억지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인연이 될 수 있다.
많은 성취들은 고군분투를 통해 얻어지지만, 또 어떤 성취들은 때를 잘 만났다면 정말 쉽게 얻어지기도 한다.
인생을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면서 이 흐름과 내가 핏이 맞는지 체크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