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퉁불퉁울 Nov 12. 2020

말은 예쁘게 하고 보자.

아들아.

예쁜 말 쓰기만큼 나에게 그 효과를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잘 없단다.


말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말은 분명히 그 사람의 생각을,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

그런데 사람은 신기하게도 자기가 내뱉은 말의 영향을 받는다.

말은 그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 또한 자기가 내뱉은 말을 닮아간다.


따라서 말은 그 사람의 형상에 따라서 달라지기만 하는 거울상이 아니라 그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 운명공동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빠는 좀 어두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은 학교폭력이 만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다녔던 학교들은 그런 것에 유독 특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들은 별것도 아닌 이유로 학생들을 때렸다.

본인의 기분이 좋지 않던지, 아니면 학생들이 아주 작은 실수를 했던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작은 이유가 됐던지.

그 시절을 살면서 선생님에게 이유 없이 맞아보지 아니한 학생은 없을 것이다.

당시에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그리고 그 폭력의 정도 또한 가볍지 않았다.

가벼운 싸대기부터 야구방망이로 엉덩이가 다 터질 때까지 때리는 경우까지, 더 나아가서 교육의 목적을 담지 못하고 선생님의 감정만을 가득 담아 주먹과 구둣발로 구타하는 경우조차 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호칭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담탱이부터 욕이 난무하는 호칭까지, 그리고 선생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학생들의 험담에 올랐고 그 험담을 예쁜 언어로 얘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들은 친구들 말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니면 선생님들을 내가 더 싫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격한 말들을 사용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더욱 친하게 묶어주는 징표라고도 생각했었다.


학생들끼리도 별거 아닌 이유로 많이도 서로 싸우고 괴롭혔다.

일진부터 왕따까지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청소년들의 음주와 흡연은 정말 흔하디 흔한 문제였다.

강하지 않은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던 90년대라고 포장할 수 있겠다.

아무튼 내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내가 더 강한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마치 공작새가 몸을 부풀리듯이 그렇게 더욱더 험한 말로 자신을 치장하게 되었다.


모두가 모두가 서로 격해졌다.

한 명이 상스러운 말을 시작하면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들을 일종의 중2병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 같더구나.


이런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아빠도 험한 말을 쓰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나쁘다는 것을 몰랐다

육두문자는 띄어쓰기만큼이나 자주 등장했다.

시간과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기에 찍힌 사진을 보면 아주 어둡다.

얼굴이 아주 어둡다. 표정도 아주 어둡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평생 할 불효도 다 했다.

공부를 꽤나 잘하는 학생이었음에도 선생님들은 아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를 떠나고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친구들이 조금 더 나이를 먹게 되고, 욕을 쓰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그런 상스러운 욕설들이 다소 부끄러울 수 있고 듣기 좋지 않다는 자각을 조금씩 가지면서,

쓰는 말을 차츰 고쳐나갔다.


천성이 착하고 여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식당에 가서도, 버스를 탈 때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먼저 인사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사를 받아준다.

그것도 어지간하면 반갑게 받아준다.

서로 간의 칭찬이 낯간지럽긴 하지만 낯간지러워서 불편한 것보다 더 크게 사람을 북돋아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꼭 서로 욕설과 나쁜 말을 편하게 주고받는 게 가까운 인간관계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쁜 말들을 남에게 쏟아내고 살았던 아빠는,

아빠도 모르게 남들에게서 마찬가지로 음의 기운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면서 살게 된 아빠는,

아빠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서 긍정적인 양의 기운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다.


믿기 않겠지만 아빠의 중학교 때 사진보다 아빠의 대학교 때 사진이 더 젊어 보인단다.

말을 예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주길 바란다.

말을 예쁘게 해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것은 너의 예쁜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너 자신이 될 것이다.

거꾸로 나쁜 말을 입에 달고 살면 그로 인해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것 또한 너 자신이 될 것이다.


말에는 기운이 있다.

나를 바꾸는, 그리고 내 주변을 바꾸는 아주 큰 기운이 있다.

꼭 예쁜 말을 쓰는 아들이 되길 바란다.




이전 14화 억지로 하려 하지 마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