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오늘은 다소 지겨울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자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 부러워한다.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했을까 부러워한다.
그런 부러움이 쌓이면 나의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성취를 깎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성취를 깎아 내리는 가장 편한 방법은 그 성취를 행운의 부산물로 취급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행운으로 치환하면 나는 편해진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게 된다.
그냥 세상이 다소 나에게 호의적이지 못해서, 내가 운이 없어서 성취하지 못한 것이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 성취가 네가 간절히 원하는 성취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꼭 알고 가야 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성취를 이룬 상태에 도달한 것.
네가 어떤 성취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지금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의 합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생은 그저 쌓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합이라는 말로 모자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인생은, 우리의 삶은 지금까지의 것들이 쌓인 형태이다.
조금 더 깔끔하게 표현해보자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보낸 시간이라는 입자로 구성되어있다.
입자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선 나도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입자가 존재는 해야 어떤 작은 성취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네가 부러워할만한 성취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면,
그 누군가는 너보다 더 진취적인, 더 나은, 하지만 더 고생스러운 시간들을 쌓아왔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모여서 지금의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성취를 볼 때 성취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 즉 지나온 시간들을 바라보지 못한다.
우리가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성취라는 것은 연속적인 과정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그 단면밖에 보지 못한다.
고개를 돌려 그 단면이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를 보지 못한다.
마치 2차원의 존재는 3차원의 존재를 2차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어떤 가수가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큰 인기를 끌고 돈방석에 앉는 모습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긴 무명 시절을 거쳐왔는지, 그 무명 시절에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그 시절을 탈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보지 못한다.
인생은 역시 한방인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멋진 사업체를 일궈낸 모습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사업체를 일궈내기 위해 인생을 갈아 넣은 시간,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보지 못한다.
인생은 역시 한방이라구나라고 확신한다.
남들이 성취를 이루기 위해 지나온 과정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노력해보길 바란다.
그저 남의 성취를 행운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