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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근지 Apr 27. 2023

내 [일] 찾기

내가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뭘 해야 할까? 나는 뭘 잘할 수 있을까?

 최근 1년 간의 내 머릿속은 이 질문으로 가득했다. 질문을 하는 즉시 즉답까지 세트로 달고 다녔다. 아마 답은 '모르겠으니까 뭐라도 해 보자.'로 귀결되고 나의 천직이라 생각한 본업(기획자) 퇴사 후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수많은 것들을 내지르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물론 평범하고 잔잔한 직장 생활에 더한 것들이다. 처음에는 사기업 기획직에서 관리직으로 가라앉으면서 월급이 줄어버린 탓이 크다고 생각했다. 프로 n잡러의 시대,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돈이 내 인생에 중요한 가치를 차지했다면 여태까지 이렇게 돌아 올 필요가 없었다. 


 사기업에서 정신없이 프로젝트를 할 때는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충분치 않았다. 몸은 쉼 없이 움직였지만 마음 한 구석은 어딘가 항상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뭔지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예술 작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크든 표면적으로는 문화예술과 관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예술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었는데 그 순간들을 버티기 위해 '난 예술을 하고 있어!'라는 생각에 억지로 매달렸던 것 같다.


예술병은 약이 없다. 근데 예술병에 걸린 게 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흠흠.,,



 왜 그랬을까?라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수의 경우 사회 초년생들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학위밖에 없다. 입시 준비를 열심히 해서 예술계의 권위 있는 학교를 들어갔다. 자랑 좀 보태면 수석으로 졸업했다. 내 과거가 예술을 했던 이력뿐이라서 이걸 계속 끌고 가지 않으면 과거를 부정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취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기획사에 들어가 일을 했다.  


 아마 그때 슬슬 인지하지 않았을까 회상해 본다. 사실 일이란 건 돈뿐만 아니라 성취감이 따라온다. 투자나 계약을 따냈을 때, 또는 뭔가 멋진 그림을 만들어냈을 때, 대표나 거래처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그러나 내게 그 성취감은 요가 수업을 1시간 수강한 것에 못 미쳤다. 회사가 좋은 일이 내가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회사에서 충족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돈을 벌 거면 차라리 저녁이 보장되어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조금 적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을 하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 박연진 사직서처럼...


 2021년 9월 퇴사한 이후로 지금, 2년이 채 흐르지 않은 시간이다. 그 사이에 또 한 번의 입사가 있었고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이 흘렀다. 현재 몸담은 회사는 '예술'관련 기관에서 행정을 보는 사무직이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난이도에 비례하여 봉급은 현저히 낮아졌다(사실, 그렇게 큰 차이는 안 난다는 것이 난센스다). 워크-라이프-밸런스가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딱 굶지 않을 만큼 소박한 돈을 벌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찾기.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잘하는 것]-[하고 싶은 것]-[수익화]라는 구조를 그렸다. 그건 명확한 단계적 과정이었다. 일단 첫 번째 과제로 [잘하는 것]이 뭔지 찾아야 했다. 무식한 나는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뭐든지 손 가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해 보았다. 처음엔 일상툰을 그렸고, 그 일상툰을 모아 책을 만들었고, 그 책을 팔기도 해 보고, 엽서, 스티커도 만들고, 자진해서 도서 디자인도 해 봤다. 일상툰도 그린다. 새벽수영도 해 봤다.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코딩도 해 봤다. 다시 그림도 그렸다. 내가 손 닿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지만, 개별 항목당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나는 시작과 절망을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영화나 매체에서 자주 보던 클리셰가 떠오른다. 재밌어 보이는데? 해 볼까?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쓰레기통 신세가 되어 있다.


한 달은 정말 오래 참은 거였다. 보통은 일주일...?


 그다음 질문은 이랬다. 나는 왜 이럴까? 9살배기처럼 찍어 먹어 보고 버리는 모습이 반복되자 내게는 더 이상 아무 가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수많은 찍먹 과정의 데이터를 통해 산출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수작업보다는 매체를 이용하는 일에 좀 더 흥미를 가진다. 

2. 기본적으로 흥미가 금방 시들어버리지만, 사람들과 같이 하면 좀 더 오래 할 수 있다. 

3. 한 번 흥미를 가지면 정보를 최대한도로 수집한 후 시작한다.

4. 미술, 디자인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

5. 수익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 그 이상은 필요 없다.

6. 한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것보다 여러 일을 벌이고 쳐내는 산만한 작업 스타일이 좋다.


어쩌면 이 특성들을 산출하기 위해 그 인고(?)의 시간을 견뎠던 건 아닐까. 그래도 수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조합해 보면...


충분한 시장 조사 후(3) 그래픽 디자인(1,4)으로 다양한 소품, 문구류를 만들어 판매하고, 브랜드 문구점에 입점(2)하는 소상공인(5)이 되면 어떨까? (...)


유난스럽지만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수많은 문구업 종사자 분들은 그 일을 쉽게 생각하는 내가 안타깝겠지만, 일단은 현재의 내 상태는 이러하다. 최근에는 리소 인쇄 작업에 흥미를 붙여서, 그래픽 디자인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사실 문구류는 현재 과포화 상태여서 시장을 잘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하다.


일단 첫 단추를 꿰고 있는 리소 프린팅 작업들을 다음 포스팅부터 올리면서 날 위한, 그리고 작업을 위한 스토리텔링을 이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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