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 : 9 다음에 올 숫자는?
우리의 첫 번째 수학적 기호와 약속
우리가 수학을 포기하는 순간들이 어떤 때였나 알아보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우리가 수를 세고 숫자를 쓰기 시작했던 그때, 아주 자연스럽게 숫자 10을 쓰는 순간으로 가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수학을 포기한 것은 숫자 9에서 다음 숫자 10을 쓰는 것이 어렵다며 포기한 것과 같을지 모르므로..
"손가락을 펴볼까? 이렇게 하나씩 접으면서 세는 거야, 하나, 둘, 셋.."
아마 저렇게 수를 세는 방법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이전 유치원이나 집에서 충분히 쉽게 배웠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손가락이라는 훌륭한 수를 세는 도구가 있기에 이를 가지고 숫자를 세는 일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수에 하나씩 숫자를 한글 배우듯 입히면 우리는 훌륭하게 하나, 둘, 셋을 1, 2, 3 아라비아 숫자로 쓸 수 있었다.
"숫자는 9까지 있어, 그럼 그 9 다음에 올 수를 나타내는 숫자는 뭘까?"
10. 또다시 정답은 너무 쉽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배웠다. 하지만 잘 살펴보자. 9 다음에 10이 온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일이다. 만약 우리가 그대로 9까지의 숫자를 쓰듯이 열을 숫자로 나타낸다면 우리는 새로운 숫자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게 9까지 숫자를 쓰던 방식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그리고 실제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 11진법 12진법에서는 9 다음의 한자리 숫자를 써서 열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쓴다면 직면할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세상 모든 수에 새로운 숫자를 만들어서 붙일 겁니까?"
당연히 아니다. 우리가 답을 알고 있듯 우리는 새로운 숫자를 만드는 것 대신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손가락을 모두 폈을 때의 개수, 열개를 기준으로 더 이상의 숫자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열을 숫자로 쓸 때 숫자를 하나(!) 쓰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숫자를 쓰기로 약속(!) 했다. 1과 0을 붙여 10. 하지만 이건 방금 전까지 9까지의 숫자를 배우며 하나의 수를 셀 때 새로운 숫자를 배우던 아이에게 전혀 자연스럽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을 일이다!
"수학은 기호와 약속의 학문이다"
숫자 10을 쓰는 순간 우리는 벌써 수를 세던 산수에서 수학의 영역으로 벌써 발을 딛고 있었다. '0에서 9까지의 열개의 숫자를 가지고 우리는 9보다 큰 수들을 10, 11, 12... 써나갈 거야'라는 말은 숫자라는 기호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수를 표현할지에 대한 완벽한 수학적 약속이었다.
"나는 10을 쓰며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당연히 나도 10을 쓰며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 설마 있을까 싶다. 하지만 당신이 수학에서 새로운 개념을 배우며 너무 어렵다고 포기하던 그 순간 당신은 숫자 9에서 10으로 넘어가던 그때와 같은 과정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1에서 9를 써왔듯이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수학 체계가, 그보다 큰 수를 써야 한다는 한계를 맞아, 그 지평을 넓혀 10을 쓰듯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순간. 그때 우리의 수학은 비로소 새로운 기호와 약속을 가져와 발전한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씩 놓쳐갈 때, 우리는 수학을 등졌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