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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Jun 05. 2023

런던에 처음 발을 딛으며

2022년 11월, 나는 런던에 처음 발을 디뎠다. 도착한 날 밤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다음 날 아침, 런던을 여행객으로서 처음으로 밟았던 순간은 기억에 남는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핸드폰 데이터 연결이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어린 시절부터 15년 동안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해서는 감격했다. 런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한 '지하철 역'에 불과하지만, 혼자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일정으로 킹스 크로스 역에 가는 선택은 정말로 해리포터 덕후 다운 선택이었다. 처음 느껴진 감정은 '향수'였다. 8살 때, 5살이었던 동생과 엄마와 함께 호주에서 두 달 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 런던 지하철역에서 불현듯 호주에서 매일 기차를 타고 영어 학원에 다닌 어렴풋한 기억이 났다. 이후로 처음으로 영어권 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것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전에도 영어권 나라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은 없었다. 그 순간 호주에서 겨울 방학 동안 살았던 기억이 피부로 느껴졌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영어 안내 표지판, 기차가 도착할 때 들리는 소리, 바람 등 모든 것이 어울려 명확한 기억이 없는 향수를 자극했다. 첫날의 느낌으로 마치 내가 런던 사람인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편안함 이상으로, 정말로 여기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호주에서의 기억이 얽혀있어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영어에 익숙한 느낌뿐만 아니라 드디어 집에 온 기분이었다.     

 

런던은 대학원 유학 준비를 위한 탐방, 그 세 번째로 방문한 도시였다. 하지만 런던은 나에게 사전 탐색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리 포터의 팬이던 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을 가장 가보고 싶었다. 살고 싶은 집, 가지고 싶은 작업실, 함께 무대에 올라가고 싶은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책상 위의 수첩에는 타워 브리지와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사진도 함께 있었다. 해리 포터의 나라, 영국은 나에게 오랫동안의 꿈과 환상,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한 나라였다.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는 나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며칠을 보냈다. 또한 2021년 6월에는 미국 LA에서 2주간 여름 캠프를 포함한 일주일을 보냈다. 스페인과 런던을 여행 계획하기 전까지는 나는 마음속으로 LA로의 유학을 이미 확정해 두었었다. LA를 떠날 때 내년에 꼭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귀국 후에는 가능한 많은 선택지를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다른 도시의 대학 캠퍼스 탐방도 계획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는 한 학교를, 런던에서는 세 학교의 캠퍼스 투어를 하게 되었다. 


런던에서 첫날 아침은 분명 축축했다. 밤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길거리 물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걸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런던의 날씨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심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아지고 런던에 대한 첫인상은 포근한 고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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