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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Jan 27. 2024

영국 음대에 다니며 얻은 것


리사이틀이 끝나면서 공식적으로 1학기가 끝났다. 영화 '소울'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목숨 걸고 했던 공연이 끝난 뒤 허탈감을 느끼는 장면과 그 뒤 이어지는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었다.


공연이 끝나니, 이거 가지고 이렇게 1월 내내 스트레스받았나 허무하기도 하고.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기도, 곧바로 이어질 5월과 9월 준비할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서는 아쉽기도 하고, 준비한 만큼 잘한 부분에는 뿌듯하기도 했다. 이렇듯 '큰' 공연 날은 여러 가지 격한 감정이 교차하는 아주 피곤한 날이다. 공연이 끝나도 영상 보면서 자기반성과 뿌듯함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온전히 쉬진 않게 된다.


여긴 1학기 시험 끝나면 2학기 시작이다. 시험 전에 겨울 방학이 주어진다. 그건 방학이 아니지. 방금 끝나서 이제 숨 돌리는데 다음 주 바로 2학기 시작이라니 놀랍지만, 한 학기 동안 영국 음악 대학원에서 지내면서 얻은 점을 정리해 보았다.



1. 음원 발매 가능한 자작곡 7곡

나의 자작곡 다수는 2012-13년, 2017-18년에 쓰였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한 곡도 못 쓰고 2022년에 겨우 한 곡 쓴 점을 생각하면 작년 3개월 동안 엄청난 수확이다. 물론 학교는 내게 곡 쓰라고 한 적이 없다. 곡 쓸 때마다 레슨 선생님께 들려드리는 과정이 의미 있었다. 이렇게 내가 레슨 받는 기간 동안 곡을 자주 써서 들려드리며 즐거워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심지어 추후 앨범 발매를 고려할 정도로 다 퀄리티가 좋다.



2.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

교수님 권유로 학사 친구들 밴드 수업에 보컬로 도와주게 되면서 나는 선곡에 선택권 없이 시키는 곡을 하게 됐다. 그중엔 '이 곡은 진짜 나랑 아닌 거 같다' 싶은 곡도 있다. 그런데 그 수업을 도와주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해 5월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엔 선곡 전체가 지금껏 해온 장르와 너무 다르게 느껴졌는데, 이제 듣다 보니 곡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띄니, 나의 음악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3. 상황 판단 및 지휘 능력

내 리사이틀을 위해서 한 달 전부터 곡 카피를 부탁하고 방학 끝나면 합주하기로 했는데, 내 기대를 가차 없이 져버리고 애들은 합주 당일에 노래를 처음 들었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지휘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리고 같이 3곡 하기로 했던 것을 1곡으로 줄였다. 공연 당일도 리허설할 시간이 공지된 바에서 절반도 주어지지 않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보컬 실력이 일정 수준에 다르면, 빠른 상황 판단과 지휘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4. 무대에서 편안하게 말하는 능력

주어진 시간 동안 남들 7곡 공연할 때 나는 6곡 공연했다. 그중 한곡은 심지어 2분짜리 곡이다. 그만큼 나는 멘트를 많이 준비해 갔다. 펍에서 공연할 때도, 이번 리사이틀에서도, 영어로도 멘트를 편안하게 잘하니 한국 돌아가면 더욱 잘할 것 같다.



5. 디테일 연습

레슨 선생님이 "너는 말할 때는 외국인인 티가 안 나는데, 노래할 때는 가끔 몇몇 단어에서 티가 나서 신기하다. 너는 다 괜찮다가 몇몇 부분에서만 그러기 때문에 확 티가 날 수 있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태어나 처음 듣는 피드백이어서 깜짝 놀랐다. 한국식 영어 발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에, 한국에서는 지적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한 학기 동안 받은 노래 피드백 중에 가장 기억 남는 게 발음이다. 예를 들면, 'fire'라는 단어에서 바로 '퐈이얼' 하는 게 아니라 '퐈이어'에 가깝게 'r' 발음은 가장 나중에 들릴 듯 말 듯 붙이는 등 단어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디테일 연습을 하게 되었다.



6. 합주 경험

실용음악과를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합주 경험이 많지 않다. 5월에 밴드 공연을 앞두고 있고, 매주 합주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재밌게 합주하고 싶다는 욕구가 거의 십 년 만에 이뤄졌다.



7. 음악에 대한 열정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장 불 타올랐을 때는 중고등학생 때다. 왜냐하면 몇몇 사람들이 너는 보컬 전공 할 수 없다고 하고, 팝은 들어줄만해도 가요는 못한다 하고 나의 독기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힘들었을지언정, 실용음악과 문턱을 넘게 해 준 건 그 복수심과 독기 덕이었다. 이후 오디션 지원에 대한, 본인 음원 홍보에 대한, 공연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열정은 줄곧 넘쳤지만 정작 그 '음악' 본질에 대한 불타던 열정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잠잠해졌다. 이제는 나를 자극하는 타인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독기를 가지고 음악을 진지하고 열심히 대하게 되었다. 단순히 유튜브에 커버 영상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노래를 찾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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