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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Sep 30. 2023

돈도 결국 마음이더라

8년 동안 착실하게 모은 돈을 단 하루 만에 날려버린 적이 있습니다. 

은행 직원의 권유로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4개월만 넣어놓으면 연리 환산 7%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하고 괜찮은 금융상품이란 말에 혹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모아 놓았던 돈을 싹싹 긁어모아서 집어넣었는데, 

투자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 금융상품의 기준이 되는 지수가 하룻밤새 96% 폭락했습니다. 

은행 측에 항의해 봤지만, 911 테러만큼이나 예상할 수 없었던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졌으니 

만기까지 5년 동안 기다리며 기적을 기대해 보자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자신들 책임은 없으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제야 금융계에 있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완전 청산이 되지는 않았지만 회복할 가능성은 0에 가깝고 구제를 받기도 어렵다는 것.


그날부터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후회, 자책, 희망, 절망이 무한 반복됐습니다.  


'왜 그날 그 은행 지점에 갔을까.'

'잃은 돈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안 될 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돈이 있다면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데......'


하루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없던 두통이 생겼습니다.  

혼자 술을 마시는 날이 늘었습니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새벽에 깨서 아침까지 뒤척이는 불면의 밤이 이어졌습니다. 


'그 정도 돈은 얼마든지 다시 벌 수 있어.'

'그 돈 없어도 내 인생에 바뀔 건 없어. 원래 없었던 셈 치자.'

'돈 때문에 건강을 잃는 게 제일 바보 같은 일이야. 단념하고 잊어버리자.'


아무리 이런 마음을 먹으려 해도, 어느새 다시 후회와 자책감이 스멀스멀 떠올랐습니다. 

특히 새벽 2~3시에 문득 잠이 깨 뒤척이다 보면,

'이런 게 우울증이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며 로또를 사거나 코인과 주식 투자에도 손을 대봤지만, 역시나였습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고 금융상품의 만기가 도래했습니다.

계약대로라면 원금의 대부분 손실이 나는 상황.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은행 측에서 해당 금융상품 판매와 관리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투자금의 일부를 되돌려 줄 수도 있다고 알려온 것입니다. 


그러자 말입니다. 

갑자기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아직 돈을 돌려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편안하고 가벼워졌습니다. 

5년간 나를 짓눌러왔던 고민과 불안, 분노, 자책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멸해 버렸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돈이 문제가 아니었구나. 

번뇌의 원인이 돈이 아니었구나! 

마음이 문제였구나. 


5년 간 내가 겪었던 극심한 고뇌와 고통은 

마음만 바뀌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가볍디 가벼운 번민이었구나. 


신수정 作   남해의 다랭이 마을   55 x41 cm, Gouache on pap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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