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곳에 앉거나 누워서 자신의 호흡을 관찰합니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을 알아차립니다.
들이쉬는 숨이 길면 '길게 들이쉰다'라고 꿰뚫어 알고,
내쉬는 숨이 길면 '길게 내쉰다'라고 꿰뚫어 안다.
들이쉬는 숨이 짧으면 '짧게 들이쉰다'라고 꿰뚫어 알고,
내쉬는 숨이 짧으면 '짧게 내쉰다'라고 꿰뚫어 안다.
- <아나빠나 사띠 경> 中에서
호흡에만 집중하는 상태는 안타깝게도 오래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떠오릅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생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즐겁고 기쁘고 짜릿한 느낌을 불러오는 생각도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가 더 많습니다.
생각을 끊고 다시 호흡으로 되돌아오려고 애를 씁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일어난다면 굳이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 어떤 느낌이 따라오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편해집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싸움 같았던 시간이 휴식같이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고통을 주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과거 결정에 대한 후회,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
타인에 대한 분노,
처한 환경에 대한 짜증,
부끄러움과 죄책감,
답답함과 억울함,
시기와 질투.
싯다르타는 마음과 마음에 따라오는 심리 현상을 조목조목 분석해 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고통스럽고 악질적이고 해로운 것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貪(탐), 嗔(진), 痴(치) 즉,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입니다.
모든 욕심의 중심에는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있으니 '나의 것'이 있고, 그러니 욕심이 발현합니다.
'내'가 있으니 비교도 하게 됩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 내가 가진 것이 남보다 못하다'라는 생각이 교만함과 열등감으로 이어집니다.
분노는 '존재의 번뇌'라고 풀이됩니다.
자기 존재에 해롭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닥치면 일어나는 느낌이라서 그렇습니다.
일단 화가 일어나면 숲에 일어난 불길처럼 사람 마음을 집어삼켜 버립니다.
억지로 참을 수는 있지만 스트레스, 즉 몸에 독이 됩니다.
탐욕과 화가 번뇌인 것은 바로 알겠으나 어리석음은 왜 고통의 원인이 될까요.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이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과 '잘못된 견해'를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몸과 생각과 감정이 곧 '나'라고 여기게 됩니다.
잘못된 견해는 '몸을 가진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그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일이 안 풀려 미치겠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억울하고 답답할 때,
이를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느낌과 그에 따라오는 분노는 내가 아닙니다.
내가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비가 오고 번개가 치는 자연 현상처럼 그냥 일어난 것입니다.
갖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도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태풍이나 거센 물결처럼 자연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에 휩쓸리지 않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항하지 말고 벗어나려 애쓰지도 말고 그냥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그에 따른 반응을 지켜봅니다.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 순간 어둠이 물러가고 지혜가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