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내가 이 드라마 16화를 전부 다 보게 될 줄이야,
<나의 아저씨>는 인간 조건에 대한 완벽한 서사입니다.
엄청난 각본, 환상적인 연출, 최고의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파울로 코엘류가 극찬한 이 드라마를 뒤늦게 보았습니다.
첫 방송 때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꼭 봐야 하는 인생 드라마'라는 추천을 수없이 들었는데,
그게 오히려 심리적 장벽이 되었나 봅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고통스럽습니다.
청각장애인 할머니를 홀로 돌보는 '이지안'은
부모가 물려준 가난과 빚, 그로 인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기업 부장인 '박동훈'은 겉보기에는 행복해야 할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사내 정치에 휩쓸려 궁지에 몰린 데다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되며 고뇌합니다.
동훈의 아내인 '강윤희'는 결혼 후 변호사가 되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외감에 힘들어합니다.
동훈의 형인 '상훈'은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에서 실패해 부인과 별거 중이고,
동생 '기훈'은 딱 한 번 감독했던 영화가 엎어진 후 10년째 백수로 엄마에게 빌붙어 삽니다.
심지어 박동훈의 회사 대표인 '도준영'조차
젊은 나이에 대기업 대표 이사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콤플렉스와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실연, 실패, 미움, 분노, 시기, 질투 같은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등장인물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연민입니다.
'불쌍해하는 마음'입니다.
박동훈은 어려서부터 가난과 폭력에 시달려 온 이지안이 너무 애처로워서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사생활을 염탐하면서
'이 아저씨가 얼마나 착하고 속이 깊은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내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되고
이후 음지에서 아무도 모르게 박동훈을 돕습니다.
상훈의 형제들과 후계동 사람들 역시 만나기만 하면 투닥거리지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서로를 돕고 위로해 줍니다.
<나의 아저씨>를 보기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1,2화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둡니다.
너무 어둡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어두운 이 드라마를 더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광일'이라는 대부업자입니다.
이광일은 이지안을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욕하고 때리고 짓밟고 빚을 갚지 못하도록 계략을 꾸밉니다.
알고 보면 이광일은 가장 고통스러운 인물입니다.
폭력배이자 사채업자인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채무자의 딸인 이지안을 만나 정을 줬는데
이지안이 자기 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친부의 살해자가 된 거죠.
이광일은 좋아하던 사람을 원수로 여겨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빠진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지안에 대한 집착과 폭력으로 발산합니다.
이지안은 그런 이광일에게서 벗어나려 애쓰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광일을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연민이 마지막에 이광일을 변화시킵니다.
"착했던 애예요.
나한테 잘해줬었고.
걘 날 좋아했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난 걔가 착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이지안의 마음을 엿들은 이광일은 비로소 미움과 집착에서 벗어납니다.
이 드라마에서 뜬금없다고 평가받는 커플이 있습니다.
정희와 겸덕입니다.
겸덕은 스님인데 어릴 적 후계동에서 유명한 수재였습니다.
정희는 겸덕과 애인이었다 실연하고 동네에서 술집을 경영하며 외롭게 살아갑니다.
겸덕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지만 그 과정에서 정희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겸덕은 정희에게 죄스런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내가 배신하고 떠난 동네...
서울 왔다가도 이 근처만 지나가면 마음이 안 좋아서 괜히 돌아갔어.
생각나면 잘라버리고, 생각나면 잘라버리고....
생각을 잘라버리는 게 아니고, 죄책감을 잘라냈어야 했는데....
뭘 잘라내야 하는지도 모르고...
머리만 자른 거지 뭐."
마지막 회에 겸덕이 정희를 찾아옵니다.
20년 만에 동네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에 대한 집착과 죄책감에서 벗어납니다.
(겸덕) 한 시간 반이면 오는 거리를 이십 년 동안 왜 못 왔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못 왔던 거 같아.
(정희) 이제 걸리는 게 없니? 네 마음에 걸려라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괴롭게 살아왔는데 나 이제 무슨 짓을 해도 네 맘에 안 걸리는 거니? 그럼 나 이제 무슨 낙으로 사니?
(겸덕) 행복하게... 편하게......
마음에 따라 살면, 인생의 본질은 고통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는데 왜 인생이 고통일까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사랑하는 대상도 모두 변합니다.
영원한 것, 변치 않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을 잃으면 고통스럽습니다.
많이 사랑하면 많이 사랑했던 것만큼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집착합니다.
연인에게 집착하고 가족에게 집착합니다.
부와 명성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집착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 커집니다.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불쌍한 마음, 불쌍해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집착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집착하는 내 마음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판단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바라봅니다.
마음을..... 가만히......
그럼 편안해집니다.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