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New Normal) 시대의 행복

행복의 기준이 바뀐다

by 낙서인간

뉴 노멀(New Normal)이란 말은 원래 경제 용어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면서 과거에 '비정상'으로 여겨졌던 현상들이 '정상'이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금융 위기 이전에는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간'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효율적인 상태를 찾아가는 시장 경제'가 경제학의 대전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방임 경제, 즉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이익(쾌락) 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경제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개인과 금융기관의 탐욕이 금융시스템의 기반을 무너뜨려버리면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해졌고 돈을 돌려 거품을 일으키는 방식의 경제성장을 추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금리와 저성장이 이어졌고 과감한 투자보다는 안전한 저축, 개발보다는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가 중요한 미덕이 되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급부상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기억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경제적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간'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가설을 깨트리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연이어 수상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뉴 노멀(New Normal)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문화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 다니고 영화나 공연을 즐기고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되어버렸습니다.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힘들게 일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행복한 여가를 즐기기 위한 것인데, 불과 2년 전만 해도 자랑스럽게 뽐냈던 여가 활동이 이제는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기업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로봇과 인공지능, 자동화를 이용한 무인 생산 시스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전염병을 비롯한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생산시스템을 원할 테니까요. 이미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했으나 정치적으로 막고 있었던 일자리 소멸이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업이 가속화하면 자영업도 호황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정치에도 뉴 노멀(New Normal)이 도래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정치를 정의하는 데 전혀 맞지 않는 틀인, 보수-진보라는 기준은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근본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나뉘는 개념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공정한 세상 이론(Just World Theory)”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누군가가 성공하고 부를 얻었다면 그것은 그가 성실하고, 영리하고, 창조적이고, 위험을 무릅썼기 때문이며 성공은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난은 게으름, 무지, 상상력 부족, 위험 회피, 자기 절제와 의지의 부족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며, 공정한 사회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고 이러한 기회의 평등이 자연스러운 결과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불공정한 세상 이론(Unjust World Theory)”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이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성실과 창의성, 위험 감수 등의 특성을 배울 수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 사람이며, 또한 성공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뛰어난 친구, 가족 등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가난하거나 불안정한 가족에서 태어나 사회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위험한 환경에 처했던 불운한 이들에게 사회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들이 가진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한국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에게는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구하는 원칙에 차이도 별로 없고 정책에 일관성도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미증유의 위기를 누가 극복해나갈 수 있느냐가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이 능력은 이념적 좌표와는 무관합니다.


세계적으로는 리더 Leader 국가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띕니다. 국가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다들 제 살기 바쁩니다. 국제기구도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치적 포퓰리즘과 민족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이 큽니다. 부국과 빈국, 생산국과 소비국 사이에 갈등이 더 커질 것입니다. 비교우위론에 기반한 글로벌화에는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고 지역 중심주의가 힘을 얻을 것입니다.


행복의 여러 정의 중에는, 자신이 속한 문화의 사회적 기대와 자신의 주관적 바람을 일치시키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상 New Normal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밖에서 주어지는 기준에 따라 행복을 좇다보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될 대로 돼라'며 순간의 향락에 빠지거나 외부에는 무감각해지고 자기 내면으로만 파고들어가 자기 연민, 또는 과대망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행복에 대한 성찰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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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설명: 제주 풀무질 서점을 종이에 잉크와 과슈로 그려보았습니다. 제주에 작고 예쁜 서점이 많이 생겨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주 서점 투어를 하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몇 군데 가봤는데 책방 주인분들이 모두 친절해서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요즘 같은 때 이런 작은 책방에서 책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제주 서점 모두 오래오래 꾸준히 잘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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