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전염병은 무엇이고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피해를 내고 언제쯤 완전 종식될지, 경제 활동은 언제쯤 정상으로 돌아올지, 과연 돌아올 수는 있는 것인지. 전 세계 모든 언론이 접촉 가능한 모든 전문가를 인용해 기사를 생산해 냅니다. 이 모든 정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염병은-기후 변화, 극도의 빈곤, 금융 위기, 제3차 세계대전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스페인 독감 등 치명적인 유행병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입니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에 전 지구적 연대는 언감생심, 국제기구는 무력하기만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미봉책으로나마 넘기고 난 후 인류는 문명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습니다. 인공지능과 나노기술을 이용해 질병을 정복하고 화성에 인류의 식민지를 건설할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로봇을 이용해 인간은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기본 소득을 받으면서 창의적인 활동을 하며 즐기는 삶을 영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염병 사태와는 무관하게 이런 계획들은 추진될 것이고, 죽기 전에 이런 세상이 실현되는 것을 확인할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이번에 확인했습니다. 과거 여러 차례 경험했고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재난에도 우왕좌왕하는 인류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수많은 위험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동서양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대체로 개인에 대해서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고, 인류 문명이라는 차원에서는 과시하는 태도를 올바르다고 여기는 경향을 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절대 잠언으로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왜 겸손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질문하고 의심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참 잘났네'라는 반응은 칭찬이 아닌 비아냥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이라는 미덕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척'하는 태도를 익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했습니다.
반면 인류 문명은, 인류가 선택받은 우월한 존재라는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휴대폰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무의식 중에 우리는 마치 이 신묘한 기계를 창조한 사람인양 행동합니다. 작은 화장실 하나 지을 기술도 없지만, 휘황찬란한 야경을 가진 크고 아름다운 도시는 '우리'가 건설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따라서 이 신기하고 창대한 문명을 건설한 인간, 즉 나의 삶은 다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인간 이외의 모든 자연 대상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죠.
겸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때, 우주와 시간의 신비를 접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겸손해집니다. 인류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내일 당장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우리가 없어졌다고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존재는-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의 일부이고 대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생각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꽃이, 돌이, 강이 무엇인지 모를 때만이,
그것들이 느끼는 바를 말할 수 있다.
꽃, 돌, 강의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은 너 자신, 너의 환상을 말하는 것이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돌은 그저 돌일 뿐이고,
강은 그저 강일 뿐이며,
꽃은 그저 꽃일 뿐이라서.
-페르난도 페소아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 그림 설명: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 고르드(Gordes)를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보았습니다. 고르드는 높다란 언덕 위에 성과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화같은 마을입니다. 저희가 고르드를 찾았을 때 마침 2018 월드컵 프랑스 대 벨기에 4강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마을의 유일한 맥주집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열기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1:0으로 승리했는데,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