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지 않으면 행복할까

재미있는 일을 위한 조건

by 낙서인간

일에 대해서라면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연수, 파업, 교육 등의 명목으로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1년 정도 일에서 떠났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일을 손에서 놓게 됐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허리가 아플 때까지 잠을 자고 낮에 텅 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책을 잔뜩 쌓아놓고 빈둥거리며 책장을 넘깁니다. 무엇보다 누군가 연락 해오지 않을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습니다. 자유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문제는 이 행복한 감정이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체로 3주에서 한 달 정도 지나면 심술궂은 불청객들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첫 번째 적은 조바심입니다. 주어진 자유가 너무나도 소중한 나머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이용해서 좀 더 즐거운 일,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쩔쩔매게 됩니다. 언어나 운동이나 악기를 배워볼까, 살을 빼볼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볼까, 여행을 가볼까, 학위나 자격증을 따 볼까 등등. 이 가운데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다른 일을 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자유 시간을 슬기롭게 이용한다는 것은 의외로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두 번째 적은 권태입니다. 권태란, 운 좋은 부자들이나 느끼는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권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은 상당합니다. 이들은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이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습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한다거나 극단적인 식이요법으로 모델 같은 몸을 만든다거나 남미, 아프리카, 인도를 배낭여행한다거나 초절정 미남미녀와 연애한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나는 일이 끝없이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도전이 끝나면 더 큰 권태가 밀려옵니다. 특히 젊음이 시들어버린 후에는 사정이 더욱 딱해집니다. 세상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부자들이 약물에 의존하는 것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권태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리한 부자들은 마치 가난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합니다. 혹은 일상생활 속의 사소한 일들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일을 오래 쉬어 본 사람은, 일을 떠난다는 것만 가지고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은 행복을 방해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무엇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의 가치관과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는 한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일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미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재미없는 일이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따분함과 지루함에서 행복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일은 권태감을 덜어줄 뿐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로 두 가지를 꼽았습니다. 하나는 기술의 발휘이고 하나는 건설(창조)입니다.


탁월한 기술을 익힌 사람은 그 기술을 발휘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연주가나 의사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여기 해당합니다. 또 기술을 발휘해서 실력 있는 상대를 제압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나 검사 변호사 같은 법률가, 정치인들이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그 기술이 평범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더 이상 기술을 향상시킬 수 없게 되면 기술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숙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 즐거움을 줄 수 있으려면 그 기술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거나, 끝없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합니다.


'건설(창조)'은 '기술의 발휘'보다 훨씬 중요한 행복의 원천입니다. 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기념비적인 것이 세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건설적인 업무에서 성공을 거둔 끝에 느끼는 만족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만족감 중의 하나입니다.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만족감을 누리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는 예술가와 과학자입니다. 그렇다면 탁월한 연주가, 의사, 법률가, 정치인, 예술가, 과학자만이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일에서 진정한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일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자기 일이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육아를 예로 들어봅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재미없고 힘들고 반복되는 노동의 연속입니다. 그렇지만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인 동시에 건설적이고 깊은 만족감을 주는 일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말했듯,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마터면 살아남지 못했을 소중한 존재가 자신의 노고 덕분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그런 일인가요?


✈ 그림 설명: 포르투갈 리스본(Lisboa)의 뒷골목에서 마주친 플라워 큐브를 종이에 과슈로 그려보았습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역사적 유적을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별로 유명하지 않은 동네 골목을 걸어 다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창가에 걸려있는 화분과 빨래, 각양각색의 오래 묵은 목재 문짝, 창문 너머로 언뜻 보이는 주민들 삶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특히 리스본은 건물벽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세라믹 타일과 도로에 돌로 수놓아진 각종 기하학적 문양이 대단히 독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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