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접하게 된 부동산 책에서부터 시작된 재테크 공부. 온갖 책을 섭렵하며 투자에 대한 지식은 쌓여 가는데 정작 돈이 없어 실천을 못하니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나를 지나쳐 갈까 봐 조급했다.
고민 끝에 부동산 투자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휴학계를 냈다. 목표 금액은 천만 원.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일 수도 있으나 대학생인 내가 1년간 모을 수 있는 현실적인 금액이면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었다. 천만 원이면 당시 부동산 책에서 말하는 지방 소액 투자, 빌라 소액 투자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휴학 1년 동안 천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매달 96만 원씩 저축해야 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종 공과금과 식비,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월 최소 150만 원이 필요했고, 개인적으로 쓰는 용돈까지 하면 못해도 월 180은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알바 사이트를 이 잡듯 뒤져본들, 고졸 휴학생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월급이란 고만고만했다. 월 180만 원을 받으려면 주 6일은 일해야 했다. 일주일에 하루 밖에 못 쉰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첫 일자리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인포 데스크였다. 입구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는 업무긴 해도 여기서 일하면 부동산에 대해 뭐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원했다.
화려한 모델 하우스의 속내는 전쟁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양 상담사 분들은 모두 기본급이 없는 100% 인센티브제 영업직이었기 때문에 손님과 계약을 성사한 만큼 돈을 벌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 배정 순서가 중요했다. 지정된 분양 상담사 없이 ‘워킹’으로 오는 손님에게는 차례대로 순서가 돌아갔는데 분양 상담사들은 그 순서에 매우 예민했다.
워킹 손님의 배정은 인포 데스크 담당이었다. 실수로 순서를 헷갈리기라도 하면 분양 상담사분들에게 엄청난 원성을 들어야 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 잘한다면 나름 꿀알바였다. 주 6일이라지만 10시부터 6시까지 하루 8시간, 인포 데스크에 앉아 손님을 안내하고 신발 정리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 빵빵 틀어주는 실내에 있으니 오히려 전기세 아껴야 하는 자취방에 있는 것보다 더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입구 데스크에만 앉아 있다 보니 기대와 달리 부동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루는 같이 일하는 분양 사무소 직원 분이 자기도 이 아파트를 두 채 계약했다며, 너도 여윳돈 있으면 한 채 사라고 농담반 진담반 말을 건넸다. 하하 저는 돈이 없어서요,라고 넘어갔지만 속으로는 내가 돈이 있었어도 이 아파트는 절대 안 샀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 왕초보의 눈에는 그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역 개발 호재가 있다 해도 지방 구도심에 있는 아파트를 왜 계약하는 거지? 나라면 그 돈으로 수도권 빌라를 살 텐데. 아파트 정계약날 바글바글 모여든 사람들을 보며 지방 아파트를 이 가격 주고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당시의 내 지식에선 부동산 투자는 무조건 수도권, 살기 좋은 번듯한 동네에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2년 후, 이 아파트는 부동산 상승기에 힘입어 분양가의 2배에 달하는 몇 억의 프리미엄(P)이 붙었다. 아무리 지방이라도 교통 호재가 있고 시기를 잘 타면 적은 투자금으로 꽤 괜찮은 차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의 세계는 넓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만약 그때 천만 원이 있었다면 애매한 수도권 빌라에 투자하느니 이 아파트에 투자하는 게 결론적으로 몇십 배 이익이었다.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이고, 모델하우스에서 3달 정도 알바를 하고 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수도권에 있는 본가로 올라왔다. 휴학한 이상 굳이 돈 나가는 자취방에서 살기보단 집에서 알바 다니면서 돈 모으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시작한 알바는 고등전문 수학 학원의 인포데스크 겸 상담 실장이었다. 학원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내실 있는 소형 학원으로 학생들이 꾸준히 왔다. 인포에 앉아 학생들의 학원비를 결제해 주고, 교재 제작을 보조했다.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지자 학부모 상담 업무도 담당하기 시작했다.
상담 온 학부모에게 학생의 현재 점수대 및 원하는 점수대를 물어보고 레벨 테스트 종이를 나눠주는 간단한 업무였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학원의 첫인상이 결정되어 등록을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책임이 막중했다. 다행히 업무는 차차 적응되었고 원장님들도 모두 좋은 분 들 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학원 업무를 해나갈 수 있었다.
수학학원에서는 주 5일 일했는데도 모델하우스보다 더 많은 월 19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덕분에 목표 금액을 저축하고도 돈이 남았다. 매달 통장에 돈이 모여가는 걸 보니 뿌듯했다. 난생처음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1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받다 보니 스스로 벌어서원하는 것에 소비한다는 기쁨이 컸다. 한 달 예산을 세우고, 지출 현황을 기록하며 꾸준히 목표 금액을 저축해 갔다.
학원 업무가 여유로울 때면 인터넷으로 소액 투자처를 알아봤다. A시의 소형 아파트에 투자해 볼까? 여기는 매매가 1억에 전세가 8천만 원으로 2천만 원만 있으면 되네. 아니면 B시의 빌라에 투자해 볼까? 그것도 아니면 경매 과정을 배워볼까? 직접 투자했다고 치고 가상 투자 시뮬레이션을 수첩에 적어가며 추이를 관찰했다.
실제 돈을 투자하진 않았지만, 목표를 향해 착실히 움직이고 있다는 만족감에 마냥 즐겁기만 했던 재테크 초보 시절이었다.그렇게 1년을 보내고 어느덧 복학할 시기가 다가왔다. 통장에는 목표로 했던 천만 원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투자하려고 보니,투자환경이 작년과는 너무많이 달라져있었다. 잇따른 정부의 강한 부동산 규제로 주택 대출이 거의 나오지 않았고, 어찌어찌 매매를 한다 해도 내야 할 세금이며 각종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 고수들도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책에서 읽었던 천만 원으로 갭투자, 순수익 얼마 이런 구조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비록 투자를 시작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통장에 천만 원이라는 돈이 있으니 든든했다. 휴학 1년간 많은 걸 배우고 느꼈기에 나름 만족스러운 마음으로복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