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간 이후,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친한 친구들 보다는 소식을 접한 지 오래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감사한 어르신분들께 책 선물을 드리러 연락을 드렸지요.
그중 한 분이 고등학생 때 문학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의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그것이 고스란히 제 마음에도 와닿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은 병원에서 입원치료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유급은 하지 않았고, 시험은 치르지는 못했으나 올 9등급, 전교 꼴등으로 한 학년을 마무리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입원치료와 병행하면서 오전 수업만 들었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야 야간 자율 학습은 불가능했지만 전교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학교에 나가는 날이 점차 많아지고 꾸준히 예습과 복습을 하면서 성적은 정말로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우수상도 받았으나, 문제는 1학년 때의 성적 때문인지 합산한 내신 점수는 높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수시로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만 가능했기에 자기소개서로 모든 것을 결판 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스스로가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덜컥 겁이 났죠.
그때 문학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저의 잠재력을 이끌어주었다고 해야 할까요? 치료에만 집중했던 저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시며 제 스스로가 몰랐던 저의 강점들을 짚어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치유를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곧 선생님과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자기소개서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늘 숙제 같았던 글쓰기가 이리 재밌는 것인 줄은. 합격이 좌우되는 입학 원서에 긴장보다 설렘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때의 즐거웠던 경험을 되살려 쓴 '자기소개서'는 모두 합격이 되었어요. 물론 제가 긴장을 많이 타고 말은 잘 못 하는 탓에 면접에서는 달랐지만요! 그렇게 제가 글을 계속 쓰게 되었고, 지금은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과거이자 서론..이었고, 본론은
출간 후, 아주 오랜만에 뵙게 된 선생님께서 이야기 도중 저에게 "2학년 때 학교에서 했던 동화 쓴 것 기억하니?"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선생님께서 기억을 일깨워주셔서 동화를 썼다는 기억은 난다만, 제가 무슨 글을 썼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선생님,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 나요.ㅎㅎ 저는 그때 수행평가로 내기에 급급해서요.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었고, 제가 글을 쓸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 했던 때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자신은 '십여 년이 지나고 나서도 모든 아이들의 글은 소중하기에 모두 간직하고 있다'고, 제가 쓴 글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과의 이런저런 깊은 대화 후에 헤어졌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톡이 울렸습니다.
그때 제가 쓴 글을 찾았다는 카톡이었습니다.
이 카톡을 보고 저는 처음에 정말 당혹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진심도 굉장히 놀라웠지만 분명 그때의 글은 형편없을 거란 걸 알기에. 파일을 여는 것이 꽤나 겁이 났고 '이.. 이 부끄러운 걸 가지고 계시다니...!'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어 본 결과... 역시나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 웬 걸! 그때 적은 동화 내용이 지금의 제 책에도 똑같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열등감’에 관한 내용인데, 초반에 내용이 놀랍도록 똑같습니다. 그때 생각났습니다. 그 동화를 쓸 당시, 저는 글을 창작할 소질이 없다 생각해서 대충 저의 마음을 주인공의 ‘이름만’ 바꿔서 적었다는 것을요!
다만 글에서의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의 글에는 열등감을 극복한 것이 아닌 자기 암시로 글을 마무리하지만, 지금의 책에서는 열등감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고 나름대로 열등감을 극복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내가 글을 쓰게 되는 이유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죠. 옛날의 글을 보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소통하는 것. 이 얼마나 값집니까. 이것이 글쓰기의 매력입니다. 늘 글쓰기가 따분한 숙제로 느껴졌던 제가 이렇게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게 될 줄, 과거에 제가 알기나 했을까요?
끝으로, 오랜 제 글을 간직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