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to owl May 13. 2024

소설) 악보(惡步) 01

‘툭, 툭, 툭, 툭, 툭, 투두둑, 투두둑, 투두둑,’


빗소리가 마치 비보(Vivo)처럼 힘차고 빠르게 지면을 두드리고 있다.

주변의 흙은 파편처럼 이리저리 튀고 있으리라…

뒤이어 천둥소리가 울린다.

몇 번째였더라… 6번째까진 세었는데…

가뜩이나 요란한 빗줄기는 기세를 몰아 더욱 가열하게 떨어진다.

장마는 다음 주부터라고 기상 캐스터가 말했는데, 하늘은 그 일주일도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고함치듯 떨어지고 있었다.


차 보닛부터 시작해서 지붕까지 쥐새끼가 우다다다 뛰는 듯한 빗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처음과 달리 불규칙한 빗소리는 어느새 귓속의 이명을 만들어내며 그의 신경을 긁어놓고 있었다.


“듣고 있어요? 선배?”

차 지붕을 밟는 듯한 소리에 그는 후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응?, 뭐라 했어?”

그는 앞을 응시한 체 되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지는 비 앞에선 바로 앞의 집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 허탕 친 거 아니냐고요!”

옆의 후배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벌써 나흘째인데 아무리 봐도 여긴 나가린데요.

더군다나 이렇게 비까지 쏟아지는데…”

후배는 운전석에서 보이지도 않는 사이드미러를 힐끗 보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기다려봐라. 내 직감이 여길 들린다고 속삭이고 있어요.”

그는 트로트 리듬을 섞어가며 말을 했다.

분명 온다.

이런 잡범들은 지 동거녀에게 단 몇 푼이라도 받아가야 신이 나는 족속이니까…

어디 돈 뿐인가? 점조직이긴 해도 약하고도 얽혀있다.

우리도 한계지만 그 녀석도 슬슬 한계다.

조금만 더 버티면 잡는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십여분 정도 지났을까?

‘지이이잉’

후배의 핸드폰이 울린다.


“네, 네 알겠습니다. 서로 복귀하겠습니다.”

후배는 전화를 끊더니 그를 난감하게 쳐다봤다.

“저기…. 선배님. 그 녀석 죽었답니다.”


‘쿠르르릉’

다시 천둥이 울린다…


그는 후배가 놀랄 만큼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대단한 인물을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흔하디 흔한 잡범 한 놈 잡는 거였다.

잡아서 그가 예상한 윗선들과 접촉하여 조금 더 크게 판을 키우려 한 게 전부였다.


‘크흐흐흐’

그는 실소가 새어 나왔다.


“나란 놈 지지리 재수도 없구나. 재윤아 돌아가자”

후배는 난감한 표정을 얼굴에 남겨둔 채 차키를 돌렸다.

이내 자동차에 시동이 켜지고, 와이퍼가 거칠게 빗줄기를 털어낸다.

그는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선 그의 딸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순간

‘딸아이를 안 본 지 얼마나 됐지?’

그는 머릿속으로 곰곰이 날짜를 세어봤다.

종종 전화는 했지만, 직업이 이모양이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는 딸애를 낳다가 죽은 탓에 지 어미젖도 못 물고 컸다.


그래도 장모님이 올곧게 키워준 덕분에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똑 부러진단 소리를 종종 듣는 딸이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화면에 중학교 교복을 입은 딸의 사진이 뜬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방금 전의 분노가 말 그대로 사그라진다.


이제야 옆의 후배도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했다.


그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까 했으나, 아직 수업시간이었다.

‘우산은 챙겨갔겠지?’

그는 다시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는 보이지도 않는 차창밖을 응시했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한편으론 서에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했다.


그가 탄 낡은 아반떼는 뒷바퀴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로 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러&스릴러) 여름굴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