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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쟌 Mar 20. 2020

비행기 안의 명품 조연 승무원



‘아, 맞다. 칫솔은 아침에 챙기려고 했지!’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 

 

 우리는 저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전날 싸 놓은 짐을 점검한다. 걱정스러운 눈빛이 가득한 가족들에게 한국인 특유의 멋쩍은 인사와 포옹을 남기고 떠나는 길. 이제 여객에서 승객이 되어 ‘비행기’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차례다.


"움직이는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우리가 쉽게 몸을 싣는 비행기.


 그 유구한 역사는 1903년 라이트 형제의 12초라는 빛나는 비행 기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인류는 하늘을 날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적극적인 구애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비행기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용할 수 있는 ‘조금 비싼 대중교통’으로의 진화에 성공했다. 

 


 그러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 아닌가? 그 옛날 ‘쓸데없는 짓’ 말라는 주변의 타박을 이겨낸 누군가가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아직도 뱃멀미에 시달리며 바다를 누비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혁혁한 공을 세우며 인터넷 검색 페이지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된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있은지 백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하늘을 날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비행기에 올라타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단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것은 바로 포인트 A에서 B로의 거점 이동. 안타깝게도 텔레포트와 같은 신기술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무언가에 의탁해 몸을 이동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행기를 타는 표면적인 이유이며 사실상 단 한 가지 이유이다. 하지만 비행기에 올라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방금 잡아 올린 활어처럼 각기 다른 이유가 펄떡이고 있다.

 


 자식 덕에 이 나이에 처음으로 비행기 타 본다며 주름진 눈가를 곱게 반달로 접으시는 칠순 어르신, 환승에 환승을 거듭해 장장 26시간에 달하는 여행을 하며 예쁜 손주를 처음 집에 데려간다는 부부, 오랜만에 가족들 볼 생각에 양 손이 무거운 기러기 가장들까지. 


 삭막하기 그지없는 2천 톤의 철제 깡통은 따듯하고 또 때로는 슬픈 사연을 안고 오늘도 하늘길을 누빈다.      


 그 모든 사연을 품은 손님들이 바로 비행이라는 드라마의 빛나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기내에서는 로맨스, 코미디, 휴먼 드라마 또 피하고 싶은 공포,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쉴 새 없이 상영된다.   


  

 세상 어디나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는 법. 

 

 비행기 안을 종횡무진 누비며 이 수많은 드라마를 수놓는 조연은 바로 필자와 같은 승무원들이다. 승무원은 언제나 주인공이 아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주연의 스토리를 해피엔딩으로 이끌기 위해 소리 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력자일 뿐이다. 


 하지만 ‘명품 조연’이라는 말처럼 이제 조연도 주목받는 세상이 아니던가? 오늘만큼은 비행기 안의 명품 조연 승무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춰보자.     



  "저도 이제 퇴근할게요!"



승무원의 세계는 군인들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우선 우리는 모두 유니폼에 살고 유니폼에 죽는다.


 ‘유니폼을 리스펙 해라.’      


 군인은 군복을 승무원은 항공사 유니폼의 고결성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유니폼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항공사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내 피부처럼 익숙하지만 또 동시에 그렇게 무거울 수 없는 애증의 갑옷. 그것이 바로 승무원의 유니폼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공통점. 우리는 누군가의 수호자이다. 군인과 승무원이 존재의 이유가 같다면 여러분들은 믿으시겠는가? 사실 우리는 단 하나의 이유, 다수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희생하시는 국군장병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이 다소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승무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초의 방어선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위장에 능하다. 비행기에서 먹고, 자고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승무원들은 마치 비행기 안에 흐르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기내에 녹아든다. 

 승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바삐 에너지바를 입 안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때로는 커튼 뒤에 숨어 승객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기도 한다. 얼굴에 풀빛 위장 크림을 바르고 산속에 납작 엎드려 있지는 않지만, 공간과 하나가 된다라는 말은 바로 승무원들을 두고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미세먼지 가득한 요즘. 밤하늘을 수놓는 것은 더 이상 별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비행기가 된 지 오래다.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 위로 둥둥 떠다니는 철제 깡통이 보인다면 당신도 한 번쯤은 기억해주지 않겠는가? 내가 탔던 그 비행기에 주연은 나였지만 내 뒤로 명품 조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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