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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쟌 Mar 22. 2020

비행기 통로의 '다리밭'

빽빽과 듬성듬성 사이 그 어딘가

 비행기를 탈 때 살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많다. 우선 사야만 하는 비행기 좌석. 그리고 비행 중 추가로 구입할 수 있는 간식, 유료 와이파이, 면세품 등. 하지만 그 누구도 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내 통로이다.     


 

 이코노미 클래스는 보통 3-3 혹은 3-4-3의 구도로 좌석이 배치된다. 초등학교 때 흔히 봤던 ‘분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 안 이 ‘분단’ 사이에는 좁디좁은 통로가 마련되어있다.     


"통로, 너는 대관절 누구의 것이냐?"


  그러나 안타깝도 통로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필자가 ‘안타깝게도’라는 감정을 구태여 덧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원하지만 그 누구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승객들은 지쳐 잠이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혹은 저도 잘 알면서 다리를 통로 쪽으로 뻗고 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통로. 통할 통(通)에 길 로(路). 말 그대로 공간을 통하게 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곳에 다리가 하나 둘 삐져나오기 시작한다면?      



 일단 첫 번째로 승객들의 이동이 불편해진다. 지뢰밭처럼 여기저기 삐져나온 ‘다리 밭’ 통로를 곡예하듯 넘어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 그뿐일까? 식사 서비스가 끝나고 기내가 어두워지면 그때 이 ‘다리 밭’의 진짜 문제가 구름 위로 드러난다.     


 

 깜깜한 기내 안.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난 한 손님은 예기치 못한 장애물에 걸려 몸이 갑자기 기울어진다. 황급히 무언가를 잡아보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어둠뿐. 3만 5천 피트 상공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야속한 중력에 법칙에 이끌려 이제 이 손님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처럼 다리를 내놓는 일은 단순한 자리싸움이 아니라 심각한 안전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하지만 바깥쪽에 앉은 손님들은 통로가 제 좌석의 일부분이라고 여기는지 다리를 쭉쭉 뻗고 잠을 청하는 실정이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서 보면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고 하던가? 밤 비행을 연달아한 어느 날, 필자는 여기저기 튀어나온 다리 장애물을 넘다 뜻하지 않은 깨달음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라마다 다리가 삐져나온 개수가 다르다!’     



 민족성. 즉, 단일 문화권에서 형성된 보편성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경제력과 시민 의식이 높은 나라의 비행을 갈 때 기내에 보이는 다리는 ‘듬성듬성’. 그러나 아직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을 형성하지 못한 나라라면? ‘빽빽’에 더 가까운 다리를 넘어 다녀야 한다. 시민 의식과 함께 성장하는 매너라는 것이 아직 보편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물론 지구 상의 모든 나라가 다 다른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어느 한쪽이 더 잘났다고 추켜세울 것도 못난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달력은 2020년이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년도를 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빽빽일까 듬성듬성 일까?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필자는 당연히 듬성듬성 쪽이기를 응원한다. 하지만 한국 비행을 다니며 열심히 관찰해 본 결과, 우리는 빽빽과 듬성듬성 중간 그 어디쯤에 위치해있다.     


"자랑스러운 그 이름,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과연?"


 아직 에너지가 넘치는 비행 초반. 다행이다. 듬성듬성이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고 내가 조종실로 뛰쳐 들어가 당장 이 비행기를 착륙시키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시점이 되면,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빽빽이다.      

 아! 아름다운 대한민국.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뒷심이 조금 부족한 것은 비행이 너무 길기 때문이고 자리가 너무 좁기 때문이라고, 오늘도 밤하늘을 누비는 필자는 그렇게 슬쩍 팔을 안으로 굽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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