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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쟌 Mar 20. 2020

3만 5천 피트 상공에서 지켜본 인생의 모든 시간

 

 우리는 가끔 잊기 마련이지만 생명은 유한하고 또 순환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비행이 생명을 싣고 뜨고 내리기 때문이다.      

 

 ‘이 사람 지금 화물칸에 있어’     

 

 네팔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 안. 부사무장은 여권을 서류함에 잘 챙겨 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화물칸이라니. 짐이 실리는 곳 아닌가.


 알고 보니 이날 비행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네팔 청년의 시신이 화물칸에 실려있었고 그의 서류와 여권을 잘 보관했다가 담당 직원에게 건네주는 것이 우리 승무원의 역할이었다. 게다가 이코노미 맨 뒷줄에는 함께 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게 된 그의 친구가 간이침대에 누운 채 함께 네팔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의 서류. 필자와 같은 출생 연도에 한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타국 땅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을 그의 험난했던 인생이 허무하리만큼 얇은 종이 한 장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거의 다 졌네요."


 생명은 매일같이 바스러진다. 느끼지 못할 뿐 우리는 조금씩 주름이 지고 머리가 희게 변한다. 하지만 이렇게 촛불 꺼지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여린 생명 앞에 우리는 무기력할 뿐이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의 삶을 그려보았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그는 받은 돈 중 과연 얼마를 자신을 위해 썼을까. 100g도 채 되지 않는 그 서류에서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의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우리는 언제나 생명의 시작을 도한다.      


 일본 나고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승객분들의 보딩패스를 정신없이 확인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감지되었다.     



 ‘손님은 한 분인데 왜......?’     



 젊은 여성 승객분이 탑승하시며 보딩패스를 두 장 내밀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보딩패스를 한 명이 대표로 가지고 탑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재빠르게 뒤따르는 승객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따르는 승객은 없는 상황. 이럴 땐 승무원의 답안지 보딩패스를 훑어보는 게 상책이다.      

 

N/A. (non applicable의 줄임말로 좌석 번호가 따로 지정되지 않은 승객을 뜻 함)


 보통 영아의 보딩 패스에 적혀있는 문구가 두 번째 보딩패스에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그제야 여성 승객의 겉옷 안에 감싸듯 안겨있는 작은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 손 한 뼘 보다 조금 큰 이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생애 첫 비행을 앞두고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승무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이 승객의 나이는 무려 생후 8일. 생후 7일 이후부터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다는 항공사의 규정을 고려해볼 때 이 손님은 단연코 필자가 만났던 그리고 만날 최연소 승객임에 틀림없다.     


 작고 귀여운 아기를 보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도 잠 쉬. 지금쯤 가족들 품에 돌아갔을 네팔 청년이 떠올랐다. 그가 덧없이 떠나간 이 세상. 이곳에서 작고 여린 한 생명이 다시 또 움트는구나.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약동하는 생명의 강인함 앞에 슬며시 고개가 숙여졌다.


 

 히말라야 산맥 위로 떠오르는 오늘의 태양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국제 사회의 매너와 교양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3만 5천 피트 상공에서 매너와 교양보다 훨씬 값진 것을 가슴에 새기게 되리라고.


 연민하자. 한여름 밤처럼 짧고 저 아이의 작은 손가락만큼이나 연약한 우리의 생을 그리고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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