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쟌 Oct 31. 2020

포비아 그 녀석.

당신의 다리 많은 생명체는 무엇?

극단적 공포를 일컫는 말, 포비아. 가슴 밑바닥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이 녀석은 모양이 다른 틀에서 구워져 나온 쿠키처럼 사람마다 품고 있는 형태가 다 제각각이다. 내 공포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우습고 누군가의 공포가 내게는 너무 우습다.      


 구름보다 높이 나는 직장을 가진 필자가 가장 많이 보는 공포증은 당연히 고소 공포증이다. 물론 그 자매품인 난기류 공포증, 폐쇄 공포증도 있다.  비행 환경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손님이 탑승하게 되면 모든 승무원들은 비상 감시 체계에 돌입한다. 공포증이란 뿌리가 깊은 심리적인 문제인지라 언제 패닉 어택으로 발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난기류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손님이 탑승한다면 기장의 말을 인용하며 (살짝 거짓말도 섞어) ‘오늘은 날씨가 매우 좋아 전혀 흔들림이 없다고 하네요.’라며 안심시켜 줄 수 있다. 또 폐소 공포증이 문제라면 자리를 창문 옆으로 옮겨드릴 수 있다.      



 하지만 땅에 바싹 붙어서 날 수는 없으니 고소 공포증을 느끼는 손님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손님을 안심시키며 곁눈질로 산소 호흡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뿐.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극심한 비행 공포증에 시달리는 손님께서 탑승하셨다. 비행 전부터 승무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시는 이 분. 양해는 제가 끼칠 피해에 대한 것이었고 도움은 옆에 앉아서 심리적 위안을 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바쁜 비행 속 승무원들은 돌아가며 교대로 손님 옆자리에 앉아 마음을 달래주는 일일 상담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으으…. 으으…. 계속 말 걸어 주세요.”     


 업무 때문에 몇 달에 한 번씩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탄다는 이 손님은 어찌나 고소 공포증이 심한지 비행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했다. 꽉 감은 눈이며 팔걸이를 움켜쥔 두 손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승무원들을 비롯해 주변 모든 승객들까지 이 손님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 손님이 화장실을 가려 몸을 일으킨 순간 모두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상체를 꼿꼿이 세워 기내 바닥에서 머리가 멀어지면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지, 손님은 도끼뜀 자세로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눈가가 촉촉한 것도 모자라 벽과 바닥을 짚으며 겨우겨우 화장실로 향하는 그의 모습에 결국 주변 승객들은 하나둘 고개를 내젓기 시작했다.     



 ‘저렇게 공포증이 심하면 아예 비행기를 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 큰 어른이 비행기 하나 타는데 이렇게 무서워한다고?’     



 입을 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양심선언부터 하자면 필자도 아주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난기류 없이 평온한 비행에서 이렇게까지 하다니. ‘조금만 용기를 내면 될 텐데….’하는 주책맞은 참견이 올라왔다. 멍하게 손님을 바라보고 있기를 한참, 순간 비슷하면서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필자는 벌레가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 벌레뿐 아니라 곤충까지 포함해서 기어 다니는 것들은 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져 주었으면 한다.(어디까지나 정중한 요청이다.) 처음 다리 많은 이생물을 접했던 그날은 필자에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충격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때 울고불고 난리 치는 필자에게 별거 아니니 소란 떨지 말라했던 가족들의 반응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건 어쩌면 나를 이해하는 일에서 출발하는 걸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그 손님을 다시 보자 그제야 중심이 똑바로 잡히는 느낌이었다.      


 저 사람에게는 높은 곳이 벌레로구나. 우리는 다른 듯하면서 같았다.     


 공포라는 것은 본래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다. 비이성의 영역을 이성으로 이해하려 한다고 한들 잘 될 리가 없다. 또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어른이니까’, ‘별로 흔들리지 않으니까’ 혹은 ‘그 작은 벌레가 널 죽이길 하겠어?’라는 말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에 생채기를 낼 뿐이다. 저명한 심리학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다. 공감은 당신의 감정이 옳다고 인정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그리고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말라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이제 필자는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번지점프 백 번은 해도 다리 많은 생명체는 못 죽여요. 그리고 내가 옳아요!
이전 13화 We are the worl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