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쟌 Mar 25. 2020

내님 항공사여, 잠시 그 손을 놓는 소녀를 용서하소서

비난으로부터의 피난

 

“죄송하지만 본사에서 지시하는 사항이라......”     


 “저희도 해드리고 싶은데......”     



 익숙하지 않은가?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카드는 서비스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빼드는 비장의 무기이자 최후의 패이다. 이 카드를 쓰게 되면 마치 비 온 뒤 무지개처럼 직원 앞에 무적의 실드가 펼쳐진다. 왜냐하면 이제 선량한 ‘나’와 ‘악독한’ 회사의 이중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보통 내 눈 앞에 있는 서비스직 종사자를 김미영 씨, 이준호 씨로 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내게 영화관이고 편의점이며 또 항공사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자신을 똑바로 봐 달라고 내미는 카드. 그것이 바로 ‘저는’ 혹은 ‘저희도’의 논리 구조이다. 이제 손님은 필연적으로 이 사람을 한 회사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는’ 해드리고 싶다지 않은가.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은 때로 어려운 요구를 해온다. 개인의 편의를 봐달라거나 안전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용인해 달라거나. 이럴 때마다 승무원들은 양갈래 길 앞에 서게 된다. 끝까지 항공사의 손을 놓지 않고 내가 브랜드 그 자체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슬쩍 유니폼이라는 허물을 옆에 벗어두고 ‘저는!’ 카드를 쓸 것인가.     


"한 줄기 빛과 같은 그 카드, 이걸 써 말아......"



 고민해서는 안 되지만 고민되는 상황이다. 사실 이미 알고 있다. 내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는 ‘브랜드’라는 무거운 가치는 함부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님의 손을 놓고 비난하는 순간 내 얼굴에 떨어지는 건 다름 아닌 내 침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 ‘눈 딱 감고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마음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양심선언을 하자면 필자 역시 이런 프리패스 카드를 써 본 적이 있다. 짜릿했다. 일탈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아니한가? 약간의 죄책감과 시원한 쾌감. 회사에게 모든 악역을 맡기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참 편리했다.     

 

 그러나 모든 일탈은 씁쓸한 뒷맛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둥지. 그것을 욕보이고 자랑스러울 수는 없는 법이니까. 오늘도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 위험한 카드를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필자는 위험한 선택인 줄 알면서도 감히 지금 당장 써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중에 맛들리는 것 보다 지금 당장 그 카드가 주는 희로애락을 파악하는 게 나을 테니까. 특히 그 ‘애(哀)’를.     


이전 06화 멀리서 들려오는 여왕의 소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