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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쟌 Oct 31. 2020

그 많던 떡은 어디에.

부모님 어디계셔?

 필자는 어렸을 때 많이 우는 아이였다고 한다. 유모차가 흔들려도 울고 천둥이 쳐도 울고 그냥 울고 싶으니까 울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게 할 말이 많기도 많았던 듯싶다. 그럼 이제 증명의 시간이다. 그렇게 주야장천 울어 젖혔던 필자는 과연 떡을 몇 개나 더 받았을까.      


 어찌어찌 어른이 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덮어놓고 울어재끼면 해결될 일도 안 되고, 종일 징징대다간 친구들 사이에 기피대상 1호가 되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세상살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물론 부모 자식 간이라 해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예뻐해주고 싶은 만큼 예뻐해 주었다간 천지분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로 자랄 게 뻔하다. 테러리스트, 아니 떼쟁이와 협상은 없다. 사탕 하나 더 먹겠다고 징징거리는 어린아이를 테러리스트에 비교하자니 양심이 좀 쑤시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속성이 그러한 걸.      


 가만 들여다보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필자가 감히 조상들의 지혜를 수정해 보자면 이렇다.      


 우는 조카는 떡 하나 더 준다.      



 모르는 척하지 마시라. 조카가 징징거리기 시작하면 새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고 “자, 이제 엄마한테 가야지.” 하는 거 다 안다. 우리는 주자니 나중이 무섭고 안 주자니 지금이 무서운 ‘떡의 딜레마’ 속에 살고 있다. 조카 하나 없는 필자가 어찌 이리 잘 아는지 물으신다면 답은 간단하다. 굉장히 자주 보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우는 아이가 존재한다. 우선 첫 번째로 정말 눈물이 나서 우는 아이이다. 서비스 업계에서는 이들을 컴플레인 고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정말 떼쟁이 대마왕이 있었으니 그들은 떡을 목적으로 일부러 목청껏 울어 젖히는 블랙컨슈머들이다. 요즘 이 떼쟁이들이 인터넷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만나 어떻게 울면 엄마가 떡을 몇 개나 더 주는지 정보를 공유하기까지 한다. 등골이 서늘한 일이다. 이제 승무원들은 유니폼 주머니 안에 떡을 항상 넣고 다녀야 한다.      


 억지를 부리는 손님에게 우리는 이미 진상이라는 단어를 부여한 지 오래다. 그런데 블랙컨슈머라는 말은 무언가 그보다 더 험악한 뉘앙스를 풍긴다. 블랙컨슈머는 명확한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상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덜 쓰면서 더 뽑아 먹을 수 있을지, 그것이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리고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는 소리를 ‘큐’ 사인 삼아 연기에 돌입한다. 거짓말, 책략, 고성방가 등 모든 수단이 조연이다. 그리고 ‘소비자의 권리’를 운운하는 건 그들의 고정 대사이다. 드디어 다다른 클라이맥스 장면. 법정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속내를 은근히 혹은 대놓고 내비친다. 짝짝짝. 연기 대상 주연이 여기 숨어있었다.      


 세상에 책임을 다 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권리란 없다. 해외 연수랍시고 골프 투어를 다녀오면서 의전 서비스를 운운하는 권리, 숙제는 하나도 안 하면서 방학을 즐길 권리. 이런 권리 추구는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한다. 만약 이런 권리가 인정받는 세상이라면 그건 어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세상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인가. 바로 성숙한 소비자가 될 책임이다. 어렵지 않다.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 마음가짐 하나면 되니까.    

 

 다 먹고 딱 한 숟가락 남겼으면서 이건 영 맛이 없으니 다른 메뉴를 가져오라던가(이건 그나마 귀여운 편이다.) 멀쩡한 좌석을 문제 삼으며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해달라 소리를 친다거나. 이런 승객을 만날 때마다 필자는 속으로 ‘너희 부모님 어디 계시니!?’를 외치지만, 힘없는 승무원 1인 필자는 오늘도 주머니에서 떡을 꺼낼 뿐이다.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 울음을 그치게 해야 한다. 이런 승객들은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먼 미래로 만남을 미루고 싶은 치과 치료 같은 사람들이다.     


 완벽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의 삶은 불만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그리니 매 순간이 불평불만의 연속이고 항의의 연속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물, 반찬을 넘어 권리까지 셀프로 챙겨야 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뾰족한 마음으로 세상을 겨누기 전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지금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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