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너로 보기 위해.
키즈 카페는 대체로 어린아이들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한다. 애견 카페라면 애견과 견주이겠다. A초등학교 앞 떡볶이 집이라면 손님들은 당연히 A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의자에 낡은 초록색 접시가 즐비한 이 곳. 만약 이 허름한 가게에 넥타이를 바싹 졸라맨 정체불명의 어른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라. 그는 그저 추억의 맛을 좇아 연어처럼 돌아온 A초등학교 졸업생일 테니까.
세상 모든 영업장은 영업 대상, 즉 타깃이 되는 손님이 있다. 이것은 점포가 없는 인터넷 쇼핑몰도 마찬가지이다.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의류 쇼핑몰, 캠핑 족을 위한 온라인 캠팽 용품 판매 업체. 어떤 형대로든 영업일수가 누적될수록 특정 집단을 향한 반복적 판매가 이루어지기고 이는 곧 메인 타깃 형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유독 어떤 집단에도 해당되지 않고 ‘탈집단화’를 형성하는 업계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대중교통, 그중에서도 비교적 가격이 비싼 탈 것 업계인 항공업 되시겠다.
항공업은 대중교통이라는 특성상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두란 정말 말 그대도 전 세계 사람들 전부이다. 돈을 주고 모으려고 해도 모으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게 모인 사람들. 직업, 성별, 국적, 나이 모두 제 각각인 그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은 손에 탑승권을 들고 있다는 점뿐이다. (만일 당신이 실험을 설계 중인 사회학자라면 공항에서 피실험자를 모집하기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물론 멀리 떨어져서 혹은 항공업의 특징에 맞는 비유로 아주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눈에 띄기는 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많은 시즌,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가 폭발적으로 많은 노선 등등. 시기와 노선에 따라 특별한 집단이 반복적으로 소비자가 되는 현상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딩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누가 손님으로 타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게 승무원의 일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 대화합의 장이 가장 극단적으로 펼쳐지는 노선은 어디일까. 바로 우리 모두의 휴양지 방콕이다. 성수기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날아다니는 지구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을 태우려고 작정한 듯 보이는 유럽 배낭여행족부터 회사를 때려치우고 한 달 살기에 나서는 한국인, 집에 가고 싶은데 티켓이 없어서 비행기를 타지 못 할 뻔했다는 태국인까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수선한 관광지는 카오산 로드가 아니라 바로 방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다양하다는 것은 개별자들 사이에 다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표현은 그들의 신체적, 문화적, 정신적 특징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선 사람을 가장 쉽게 나누는 방법 중 하나는 성별이다. 중간에 노선 변경하신 분들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국적이나 종교에 비해 선택지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남성성’, ‘여성성’ 같은 편한 단어로 사람들을 한 데 묶어서 말한다. 하지만 남자라고 다 곰을 만났을 때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니고 여자라고 다 똑같이 죽은 척하는 것도 아니다. 비교적 쉽게 구분되는 게 성별적 특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1, 여자-2,3,4… 가 존재한다.
그럼 애초부터 복잡한 문화적, 정신적 차이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들어낼까.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아버지는 케냐인인데 미국에서 자란 A 씨. 어릴 때부터 고소 공포증이 너무 심해 비행기가 중간에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인 B 씨. 성별로 인한 특성보다 백배 천배는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비행기에 좌석이 300개라면 승무원들은 통통 튀어 오르는 300개의 개성과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내 앞에 앉은 손님이 옆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들은 답답한 상식으로 꽉 막힌 우리의 사고를 도끼로 내려 칠 것이고 심지어 예상 밖의 행동으로 본인, 혹은 타인을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어제 본 그 손님과 별로 다를 것 없네.’
‘흔한 불평이네.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뻔히 다 보인다 보여.’
하지만 승무원도 사람인지라 비행을 몇 년 하다 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심지어 올해가 작년 같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손님이 어제 파리에 내려 준 손님이라 맹세할 수 있다. 물리적 법칙에 따라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궁예가 되어버린 만렙 승무원들이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롭게, 개별적으로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란 없는 법. 하다 못해 붕어빵 틀에서 찍혀 나온 붕어빵도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르게 생겼을진대 수억 년의 진화를 거치고 무수한 우연을 뚫고 창조된 너와 내가 같을 리 없다. 눈 앞의 손님을 개별적인 한 사람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만렙 궁예 승무원’도 ‘만렙 승무원’으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승무원 1은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