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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향수(鄕愁)

by 포레스임

여름이 성큼 가까워지나 보다.

비가 종일 내린다. 전과 다르게 비가 오면 생각에 젖는 일이 많다.

지나온 만큼 시간이 내 곁을 지나, 기억의 부스러기가 많아진 모양이다.


비가 오니 문득 부침개가 먹고 싶어 진다. 내 몸은 기억회로를 정확히 외부환경에 맞게, 음식부터 요구하고 있었다. 부침개는 밀가루 풋내가 진동하고, 김치 몇 조각 얹어 부치면 족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부침개가 내 위장을 자극할 때면, 시큼하고도 톡 쏘는 시원한 막걸리가 제격이다. 나름의 취향이 있겠지만,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전통주인 탄산이 조금 들어간 막걸리를 좋아한다.


톡 쏘는 청량감에 산이나 들로 나가 한참을 걷고 나면 무엇보다 한 잔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막걸리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갖가지 상표와 맛으로 고르기가 잠시 망설여질 정도로 많은 제품이 시중에 나와, 전과 같이 막걸리를 다루는 번거로움은 많이 줄었다.


언젠가 '막걸리 빚기 일일체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단체로 참가했기에 자의적은 아니었으나, 막걸리를 대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열의에 흠칫 놀랐었다. 색깔도 고구마를 이용한 자색막걸리에, 히비스커스, 복분자, 백년초 등, 동원되는 재료도 호화로웠고, 찹쌀을 쪄서 누룩과 물을 혼합하는 두어 시간의 실습 후 각 팀마다 소믈리에를 자청하는 맛 품평회는 그날의 백미였다. 문득 막걸리가 흐르는 세월 속에서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한 흐뭇한 하루였다.



어릴 적 우리 집의 생계였던 구멍가게 안쪽 모퉁이에 막걸리 항아리가 하나 박혀 있었다. 동네 가게에서 냉장고를 갖출만한 여력은 없었기에 땅속 저온에 의존하여 그나마 냉기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써서 큰 항아리 하나를 묻을만한 깊이를 파서 만든, 우리 가게 막걸리 독은 어머니와 나에게는 참 애물단지였다.


밤낮으로 막걸리 손님은 줄지 않아 매출에 영향이 많은 만큼, 막걸리 독의 위생적인 유지관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묻어있는 빈 막걸리 항아리를 씻는 것이 여간 고되지 않아 씻어내도 그 잔 내음이 다 없어지긴 힘들었다.


그 시절 주전자로 떠낸 막걸리는 요즘의 냉장 기술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시큼하면서 달착지근하고 비릿하기도 한, 막걸리 내음은 가게 안을 더 우중충하게 만들곤 하였다.

어머니는 주전자를 들고 오는 손님마다 그 액체를 꾹꾹 채워 들려 보내곤 하였다. 여름이면 습도가 높아지고 맞바람 칠만한 다른 출구가 없었기에 막걸리 냄새는 온종일 아릿한 취기의 냄새와 함께 몸에 들러붙는 듯 질펀하고도 끈적한 향내가 종일 가게 안에 붙박여 있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 고목인 느티나무를 신성시하여 바로 앞에 있는 우리 가게에서 봄의 농사철이 되면 한말이나 되는 막걸리를 주문하여 주문을 외우고 소지(燒紙)하며 막걸리를 통째로 들이부었다. 마을의 수호신인 나무가 일 년 농사를 무탈하게 해 주길 기원하며 답례로 막걸리를 부어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막걸리가 그렇게 신성한 의식에 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 한창 사춘기인 나는 그 내음이 너무 싫었다.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동네 어른들이 두런두런 가게 안을 채운 후 막걸릿잔을 들이키면, 금세 바닥은 지저분하게 액체가 이리저리 흘러 냄새를 더 증폭시키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또래의 여중을 다니는 주인집 아이가 심부름으로 두부를 달라면서 코를 쥐어싸고 돈을 내밀면, 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받아 들고 두부를 내밀면서 먼 곳을 응시하기 일쑤였다. 그때는 어른이 되면 막걸리 같은 술은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의 갈피는 허옇게 머리카락으로 고스란히 피어날 즈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그날의 동네 어른들처럼 막걸리 잔에 손이 가고, 한잔 들이켜고 있는 스스로가 가소로우면서 애처롭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외곽의 아스라이 먼 기억의 신화 같던 그 동네는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 자취를 찾을 수도 없지만, 풍미 있던 그 막걸리의 자취는 아직도 내 머리의 장기 기억 속에 남아 비 온 후 흐린 날, 마른땅을 적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 듯 생각이 난다.



차가우면서 뻑뻑했던 그 액체는 한결 세련되게 변하여 부드러운 식감으로 목덜미를 타고 청량감을 더해준다. 발효 후 청주가 될 수도 있었던 액체가 주저 없이 걸러져 세상에 나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막걸리는 어쩌면 발효의 시간을 지나기 어려운 우리 서민들의 삶과 많이 닮은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살이가 한순간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고 답답한 가슴을 적시고 싶을 때, 하얗게 단색으로 나온 막걸리가 생각난다. 지금에서야 탁주의 혼탁한 빛깔이 희부옇고 맑음과는 거리가 먼, 세상사와 많이 닮았다는 깨달음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지나간 시간만큼 시큼 아련한 액체가 생기 있는 뽀얀 우윳빛으로 재생되어 다른 감흥과 맛을 주는 막걸리의 변신만큼, 내 시간 또한 농익어 가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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