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내가 모르는 나를 찾아서

by 포레스임


우리는 모두 누구나 할 거 없이 나름의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여기서 레퍼토리는 '연주가나 극단, 배우 등이 공연하기로 결정한 작품의 목록'을 말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나는 우리 시의 문화예술을 주관하는 곳에서 근무 한다. 잠깐 소개를 해보면, 극예술단과 교향악단, 무용단, 합창단 등에서 각자의 분야에 따른 레퍼토리를 진행한다. 나는 행정실 소속이라 그들의 진면목은 알 수 없으나, 긴 시간 동안 열정을 바쳐 쌓아 올린 분야 임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예술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바로 그 레퍼토리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공감은 공유하는 목록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이유는 각자의 거대한 레퍼토리를 갖는 것 때문이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 중에 사석에서 유난히 정치, 종교를 화제에 올리는 친구가 있다. 사실 재미없고 금기시되는 상식적인 이야기인데도 이 친구는 유난히 떠든다. 결국 흥은 깨지고 기피하는 인물로 찍혀, 회식이나 개인적인 대화를 피하는 대상이 되었다. 흥미가 생겨 그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이유가 뭐냐고?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할 뿐, 자세한 설명도 원인도 모른 채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다를까? 나 또한 호불호가 분명한 편이다. 싫은 건 죽어도 못한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참된 현실은 없다. 오로지 현실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최근의 화두가 되는 사건들은 한결같이 집단 간의 소통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내 논리에 급급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사이 진실은 비죽이 웃고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목소리 큰 놈이 왕이라고, 도무지 상식적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꼭 경찰이 나서야 상황은 진정된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기본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의 레퍼토리도 나름 견고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이 것을 과연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결국 나도 유리벽 안에 갇혀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줄리안. B. 로터'의 사회학습이론이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중될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이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도미노현상처럼, 세계가 좀 뻔뻔하게 돌아가는 중이라는 것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자기 합리화가 사회전반에 팽배하게 퍼져있다. 일단 내 주장을 목소리 높여 질러보고, 센 놈이 나와 아니라고 하면 꼬리를 내리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상식과 질서를 따르는 미덕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사람의 성격은 개인이 그의 환경과 상호 작용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J.B.Rotter)

내 생각도 별반 다름이 없다. 사람은 각자의 경험적 성장과 공간에 의해 서로 다른 기준 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남들을 대할 때는 자기와 같을 것이라 착각을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곤 한다. 절대 타인은 나와 같지 않다. 내 생각의 잣대를 타인에게 적용해 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와는 다른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해의 전제가 마련된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과 기대의 중심은 나 자신이다. 비유를 하자면 격자무늬의 벌집과 같이 각자의 틈 속에서 꿈틀대는 애벌레와 같은 사고를 하는 것이다. 내가 잘 살아야 하고, 내가 좋은 차, 좋은 집, 내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 온통 모든 관심은 나에게만 있다. 타인은 나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객체로 비하시킨다. 결국 홀로 고군분투하는 벌처럼, 진정한 행복은 모르는 애벌레의 삶을 이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 자기가 원하는 그 대상을 얻어도 결국은 허망함 뿐이다.



같이 살아간다는 의식이 충만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의 이웃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같이 살아간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공동체 가족생활이 근 세기 이후 산업의 고도화 진행으로 무너지면서 고독한 개인들은 과시욕이 유일한 쾌락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과시는 결코 목적이 될 수없다.


우리 사회는 속도경쟁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잘 살아보자고 미친 듯이 달려는 왔는데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개인들 또한 사회변동에 따라 파편화되어 세대별로 분리된 삶을 살다 보니, 각종의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 나를 다시 살피고, 다른 이들을 존재를 깊이 생각하는 미덕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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