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舞臺) 노스탤지어

무대는 권력이다

by 포레스임



금요일, 공연이 시작되는 날이다. 소공연장의 연극과 대공연장의 오페라 그리고 야외무대의 무용단 공연, 각자의 공연으로 회관 복도는 분주해진다.

업무차 분장실과 연습실을 둘러본다. 출연자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후미진 복도 한쪽에서 연극배우 한 명이 대사에 감정을 넣는 연습이 한창이다.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 몇 마디 읊조리다 캑캑거리니 한편으론 안쓰럽기까지 하다.

연습실은 그들의 발성과 악기와 노랫소리로 후끈 달아오른다. 각자의 분야에서 온 힘을 쏟아 무대를 향한 그들의 열정은 예리하게 다듬어진다.

보이는 것들을 위한 작업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권위와 힘이 되어 추종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른바 팬층의 형성을 말한다.

무대는 그렇게 단순히 공연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인간은 정치적이며 권력 지향적 동물이다. 모든 공연은 추종자를 양성하고 무대 위의 대상은 힘과 권위를 얻게 된다. 즉, 문화 권력자의 탄생을 우리는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공연이 없는 날 안전 점검을 위해 무대 위에 서보면, 빈 객석이 원형으로 나를 에워싸고 있다는 느낌에 오싹해지곤 한다. 사람이 없는 빈 의자뿐인데도 이러한 공간의 구성은 특별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인류 최초의 극장은 BC 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극장의 무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다. 무대는 누구나 배우가 되면 설 수 있었다. 사람들 누구나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왕과 제사장만의 공간이 아닌 평민들도 언제든 입장이 가능한 디오니소스 극장은 그리스 사회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무대는 원형무대와 돌출무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프로시니엄 무대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은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무대는 관객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 물론 원형이나 돌출형태의 무대는 물리적인 공간을 좀 더 가깝게 배치했다.

우리 전통의 마당놀이는 아예 무대라는 개념이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극형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의 공간과 관객의 공간은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형성한다. 보는 사람들은 선망과 감정의 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이는 추종자를 양성하는 효과를 얻는다.


건축물인 문예회관의 무대는 어쩌면 너무 고전적 의미의 무대라는 생각이다. 현대인들은 무대를 가상공간으로 옮겨놓았다. SNS 미디어는 양상만 바뀌었지 바라보기와 권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이 연예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 노출이 많은 연예인이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자가 바뀐 '전국노래자랑'은 그리스 디오니소스 극장과 같이 사람들 누구나 용기만 있으면 TV속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는 민주적인 장치로 보인다.

영화나 연극, TV에 나올 수 없는 대중들은 권력의 향유를 위해 페이스북이나 각종의 SNS에 자신의 사진이나 글을 올린다. 이 글을 올리는 나 또한 권력 지향을 하는 행위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다.

미디어나 찰나의 무대를 통해 권력을 가진 연예인이 과거의 권력자와 다른 점은 연예인은 영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배우나 가수가 인기가 떨어질 때 힘든 것은 이런 권력의 중독현상에서 벗어나기 힘든 금단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희극배우출신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통해, 우리는 왜 무대가 권력지향적인가를 알 수 있다. 2015년 대통령 역의 드라마 "인민의 종(국민의 일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정계로 입문하고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작년의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지금도 전 세계적 화제의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드라마나 연극의 환상은 사람들에게 현실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현실과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입으로 건네진 환상은 하나의 심벌인 배우에게 집중되어 현실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이상적 현실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과정은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이러한 전력이 있다.


대중은 무대를 보면서 환상을 품는다. 하긴 우리가 보는 현실의 세상은 어차피 환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keyword
이전 11화부자나 되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