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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사회를 그리며

" 복지는 투자다 "

by 포레스임

나는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안의 양처럼 열심히 살을 찌우고 털을 부풀리면, 어느 날 문득 나의 싱싱한 젊은 날과 이상, 꿈들이 뭉터기로 빠져나가 있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주기적 먹이공급과 안락한 잠자리였다. 안정된다는 것은 길들여져, 다른 생각을 못하게끔 조직 속에서 일정시간 노동을 의미한다.

누구나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위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차피 인간은 목적이 없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로 내세운 철학자도 있지만, 존재라는 것이 아무런 입지 없이 오롯이 서있을 순 없다.


대학 교양철학 강의 때, 유난히 노마드(nomad)정신을 강조하는 교수분이 있었다.

질 들뢰즈에 의해 철학적 의미를 부여받은 말이 '노마드'다. 한마디로 유목민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거다. 농경민족의 후예로 태어나,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평생직장은 없어졌다는 선언을 마주한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로 직장은 없어도, 직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한다.


뭐가 이리 변동이 심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가? 요즘 청년들이 헷갈리는 이유다. 부모들의 권유와 변동 없는 삶의 희구는 오히려 안정된 직장으로 귀결됐다. 전국에 있는 의대를 채우고 나서야, S대 이공계 대학으로 마지못해 착륙하는 촌극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회계사나 로스쿨로 몰리는 현상도 마찬가지 이유다.


나이 든 나 또한 내년이 지나면, 노마드정신으로 직업을 알아봐야 한다. 몇 가지 노후에도 쓸만한 자격증도 챙겨놨다. 하지만 뜻대로 될는지 모르겠다.

프로복서였던 마이크 타이슨이 명언을 남겼다. "얻어터지기 전까지 누구나 계획은 있다", '자식, 제법이다' 인용구로는 최상이다. 모두 계획은 있을 것이다. 그게 과연 먹히느냐의 문제는 차후로 하자.

약육강식 사각링의 사회

우리 사회에 차선책이란 없다. 약육강식의 맞짱이 있을 뿐이다. 사회 안전판이 있기는 하지만 선별하는 스티그마(낙인효과)를 전제로 한다.

한마디로 앓느니 죽느니만 못한 복지제도가 인간의 존엄성을 상처 내고 있다. 이러니 '노마드 정신'이란 '빛 좋은 개살구' 아닌가?


도전에 응전은 어쩔 수 없다. 유태인들이 두려움 없이 대학졸업 후 80%가 창업의 길로 나서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들의 나라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받쳐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사회의 지주대는 허약하기 그지없다. 자본의 논리가 사회전반에 팽배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타이슨이 파고드는 사각의 링과 무엇이 다를까?


얻어터져도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는 사다리 정도는 제공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 치고 집안, 부모의 경제력, 사회적 배경 없이 성공했다는 모델은 찾기 힘들다. 사업뿐 아니라, 프리랜서들이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용에 있어 해고만 쉬운 노마드가 되어선 안된다.

진정한 21세기 노마드 사회를 이루려면 젊은이들이 한 번쯤 떨어져도 믿을 수 있는 안전망은 구비가 되어야 한다.

nomad(표준어-노매드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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