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백 원짜리 지폐를 주시면서 말씀하신다. 속으로는 이미 남길 돈을 셈하고 있다. 이발소 가봐야 뻔하다. 바리깡도 잘 안 드는 걸로 깎으면서, 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짱구라고 놀릴 것이........., 개천 건너가는 다리 위에 길거리 할아버지 이발사가 잘 깎는다. 돈도 이발소 반밖에 안 받으니....., '우히히히'....., 다 남기자고 하는 짓이다.
시장 넘어가는 다리 위...., 역시나 이발사 할아버지가 계신다. 나무궤짝 의자 위에 나를 앉히고 이리저리 능숙하게 내 머리를 깎는다. "짜식 머리통이 나중에 한자리하겠다!" 기분 좋은 말씀도 하신다. 그것보다 남길 돈을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만화가게에 가서 2권 보고......., TV도 한 시간 보니까... 황금박쥐?... 요괴인간을 하나?
"오빠! 여기서 머리 깎아!"
또 저것이 왜?... 산통을 깬다. 초등학교 1학년 내 여동생은 입이 싼 계집애다. 친구 태숙이와 어디서 놀다 온다고 했다.
분명히 엄마한테 말할 텐데, '흐이그'하는 수 없다. 잠깐 있으라고 하고 셈을 치른 후, 바로 옆의 빙수가게로 데리고 간다. 문방구점에서 하는 빙수인데 빙수가 더 많이 팔린다. '우리 집도 저런 거 하면 돈 벌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 차례가 오길 기다린다. 빙수기계에 덩어리 얼음을 하나 끼워 손으로 돌리는 대로 사각사각 소리가 벌써 시원해진다.
"오빠! 돈 어디서 났어?"
"머리 깎으라고 엄마가 줬다!"
"근데 빙수도 사 먹어? 나머진 엄마 도로 줘야지!"
"공책 사서 쓰든지..., 하라고 하셨거든!"
"그럼 우리 만화책 보러 가도 되겠다!.... 그치 오빠?"
이것들이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자기에게 들켰으니 나머지 돈을 같이 쓰자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빙수는 왜 사주는지 모르겠다. 두 녀석이 벌써 반이나 퍼먹고 있다. "나도 좀 먹어보자!" 숟가락을 들고 나도 먹었다. 왠지 시원하지가 않다.
만화방으로 갔다. 세명이나 되니 만화책 두 권씩만 보라고 한다. 근데 조금 있다가 '요괴인간'하는 날인가 보다. TV옆에 그렇게 써놨다. 한 권씩만 보고 TV를 보겠다고 했다. 요괴인간 만화가 재밌게 흐른다. 베라와 꼬마베로 가 위기에 처했다. 막강한 벰이 나타나 구해줄 것.........., 나무 작대기가 내 머리를 쿡 찌른다.
"30분 지났다. 넌 동생들 데리고 나가!"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나가란다. '혼자 왔어야 하는데'........., 저것들이 늘 말썽이다. 지난번 포도서리할 때도 꼭 나를 물고 들어가 나만 혼났다. 만화가게를 나와 집으로 간다. 나머지 줄거리가 오는 내내 궁금해 죽겠다.
"어우! 누나 닮아서 키가 많이 컸구나!...... 동생 데리고 어디 갔다 오냐?"
"안녕하세요! 삼촌!"
작은 외삼촌이 오셨다. 외삼촌은 특유의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외갓집에서 살 때도 특유의 그 냄새가 났었다. 성격이 조용하시고 다정다감해서 성남에 살 때, 나를 데리고 낚시터에 가곤 했었다. 엄마는 눈가를 훔치고 계셨다.
"그래...... 가면 몇 년이나 거기서 일하니!"
"3년을 계약했으니 버텨봐야지!"
"그 더운 데 가서 밥이나 제대로......, 졸업을 했으면 지금쯤 은행에서 편하게 일할텐데.."
"다 지난 얘기를 해!..... 누나는 참!"
작은 외삼촌이 사우디 다란인가 어딘가로 일하러 가신단다. 원래 상고를 다녔는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1년 사이로 돌아가셨다. 황달이 와서 학교를 못 가고 집에만 있는 통에 졸업을 못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 동급생이던 친막내삼촌은 근사한 양복에 은행원으로 일하는데......., 작은 외삼촌의 미소가 유난히 좋았다. 빙그레 웃을 때마다 하회탈의 주름이 생각난다.
"우리 뒷산에 올라가 볼까? 여기 산이 도봉산 다음으로 멋있다던데 정말 그러냐?"
외삼촌은 불암산에 올라가 보고 싶어 했다. 내가 앞장을 서고 산으로 간다. 가는 길에 호야를 불러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삼촌에게 친구를 불러 같이 가자고 하니 데려오라고 하신다. 호야를 불렀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며칠 못 봤는데 좀 긍금했다.
"히야! 바위산이 근사하구나! 오르려면 힘깨나 들겠는데!"
아직 한참을 가야 하는데 삼촌은 감탄부터 한다. 산초입 들녘 가로수길에서 호야를 만났다. 나 혼자가 아닌 삼촌이 옆에 있어선지 좀 머뭇거린다.
"네가 호야구나! 너희 집에 들러오는 거란다!" 삼촌이 말했다.
"어디 갔었어! 우리 외삼촌 하고 산에 가는 길이다!"
호야 엄마가 어제 집에 안 들어오셨단다. 그래서 엄마를 찾는다고 식당에도 가봤는데 거기도 안 왔었다고 한다. 갑자기 나도 심각해졌다. 삼촌이 백 원짜리를 주시며 같이 놀라고 하신다. 조금 둘러보다 내려간다고 하셨다. 삼촌에게 밥 먹을 때까지는 집에 간다고 말하고 호야와 내려왔다.
또 백 원이 생겼다. 갑자기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을 했다. 호야는 나에게 당고개 쪽으로 가자고 한다. 거긴..... 좀...... 먼데? 참! 호야가 엄마 찾는다고 했었지.... 호야와 당고개 쪽으로 걸었다. 일부러 개천길로 간다. 깊지 않으니 신발을 벗고, 물살이 발목에 가르는 개천길이 시원하니 좋았다.
"하이고! 이 눔 들아 그 지저분한 물에서 발 담그고 싶냐!"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우릴 보고는 혀를 차며 말하셨다. 시장옆을 지날 때쯤 개천물이 우리가 봐도 더러웠다. 신발을 주섬거리고 신었다. 시장을 가로질러 가면 바로 당고개가 나온다. 근데 거기 어딜 가는지 호야는 말이 없다. 그냥 거기 어디쯤 엄마가 있을 거 같다고 한다.
시장에 들어서니 부침개나 튀김을 파는 가게에 눈길이 머문다. 갓 튀겨낸 튀김이 먹음직스럽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점심도 안 먹고 밖으로만 돌고 있다.
"호야! 저거 먹을래? 아까 울 삼촌이 준 백 원 있다!" 호야가 고개를 끄덕인다.
"갈게요! 지금 짐 싸고 있잖아요!"
시장 단속아저씨들이 옷장사 아줌마를 채근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옷보따리를 싸는데, 작은 보따리 하나를 뺐으려고 한다. 근....... 데, 우리 고모다!! 반사적으로 그 보따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낚아채려는 그 보따리에 나와 호야의 손목이 보태졌다.
"아줌마! 애들이우? 허! 그놈들 참!! 하여간 이 자리 얼씬도 말아요!!"
고모는 시장에서 보따리 옷장사를 하셨다. 가게도 없이 하니까 자주 이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고모는 우리를 데리고 아까 그 튀김집으로 데려가셨다. 호야는 배가 고팠는지 부침개 한 장을 게눈 감추듯 했다. 그러다 밖으로 소리쳤다. "엄.... 마!!!" 호야 엄마가 건너편 국밥집에 있었다. 호야는 튀듯이 그리로 갔다. 나도 가본다. 고모도 얼결에 국밥집으로 오셨다.
"집에 식당아저씨 안 왔었어?"
"아무도 안 왔다! 그래서 나 혼자 잤어"
호야 엄마는 호야를 끌어안았다. 고모와 호야 엄마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저런! 저런!.. 나쁜 사람들이네!"
이번엔 고모가 혀를 찼다. 고깃집 식당에서 호야엄마를 부려만 먹고 봉급을 안 줬단다. 호야 엄마는 가끔 들르던 이곳 할머니식당으로 와서 일하기로 했다고 한다. 고깃집 식당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올까 봐 무서워 집엔 못 오셨다고 한다.
봉급은 안 주고 팔고남은 고기만 가끔 주니, 견디기 힘들어 도망치셨다고 한다.
어쩐지 호야네 집에서 먹은 불고기가 맛은 있었는데, 호야 엄마는 우울해 보였다.
"고모는 짐도 있어 집에 갈 테니, 네 엄마에게 말씀드려 도와드리라고 해라!"
고모는 나한테 엄마에게 말해 호야네를 도와달라고 말하라 하셨다. 그 와중에 나는 국밥을 실컷 먹었다.
호야엄마와 호야 그리고 나는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가 찐 감자를 주신다. 나는 배가 불러 더 먹을 수가 없었다.
"넌 뭘 먹었기에 손도 안대는 거야!"
나는 쭈뼛거릴 뿐, 별 대답을 못한다.
"그래서?..... 거 희한한 사람들일세!... 호야엄마! 앞장서요!.... 내가 가서 받아주리다!!"
엄마가 얼굴을 붉히고 호야 엄마를 채근해 나가신다. 가게 할 때, 외상값 안 주면 울 엄마가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 어지간한 아저씨도 군말 없이 갚곤 하였다. 호야가 아까보다는 표정이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