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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동 아이들-(동화2)

곤달걀과 호야의 라면

by 포레스임 Jul 18. 2023

겨울이라 바람이 매섭게 분다.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연신 문을 열어대는 바람에 찬바람이 자꾸 들어온다.


방 안에서 동생과 나는 빼꼼히 열린 여닫이 문으로 가게 안 사람들을 본다. 어제 자기 전에 엄마는 큰 들통하나를 연탄난로 위에 얹어놨다. 그리고 계란 여러 꾸러미를 넣어 놓으셨다.


우리 동네 아저씨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막걸리에 그 계란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계란이 좋아 보이지 않던데? 아저씨들은 연신 껍질을 까고 잘도 먹어댄다. 모처럼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방학이라 학교 갈 일도 없어진 우린 방안에 책을 늘어놓고, 배를 깔고 방학숙제를 했다. 얼마 후, 웅성이던 가게 안이 조용하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옆집에 다녀올 테니 가게 좀 보라고 하신다.


동생과 나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벌떡 일어나 계란들통 앞으로 간다.


"한 개씩만 먹어볼까? 엄마가 많이 넣어놨다!"


동생이 제안을 한다. 하긴 이렇게 큰 들통에서 한두 개쯤은 표도 안 날 것이다.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우웩! 이런 걸 어떻게 먹지?"


우리가 보기엔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계란이 들어 있었다. 냄새도 찐계란과는 다르다. 동생은 코를 쥐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자세히 보니 병아리가 되다만 달걀이었다. 껍질 속에 있으니 계란은 맞다. 근데....., 시커먼 병아리 털도 보이고...., 노른자도 뭉개져 보인다.


"그새를 못 참고 가게 보라니까!, 들통은 왜 열어!......, 어른들이 먹는 거야!... 자꾸 열면 안 돼!!"

가게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말했다.


'어..., 아버지도 오시네'

아버지는 가게 수입으로만 살기 힘드니 취직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책을 들고 공부하는 척하였다.


아버지와 엄마는 가게에서 두런두런 무슨 말씀을 하신다. 가게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틈으로 보니 뽀빠이 아저씨가 왔다. 나이는 아버지보다 많은가 보다. 아버지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다리를 절고 다녀 그렇지 상체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머리를 짧게 깎아 영락없는 뽀빠이를 닮았다.


"아이고! 형님 오세요!"


아버지 얼굴에 희색이 돈다. 엄마는 뭔가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 들통의 뚜껑을 뽀빠이 아저씨가 연다.


"이야! 맛나겠다."

"한잔 해야겠죠. 형님!"

"좋....., 치, 안주가 아주 그만인데."


저런 경우는 계산이 헷갈린다. 아버지도 드시니 계산은 누가하나? 엄마가 표정이 안 좋은 이유를 알겠다. 뽀빠이 아저씨는 능숙하게 곤달걀 껍질을 까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몇 번의 우물거림과 목 넘김이 다른 아저씨들과는 다르다. 병아리 깃털 따위는 우물거려 뱉는다. '저렇게 잘 먹으니 뽀빠인가?'문틈이 너무 벌어져서인지 아저씨가 나를 보고 나와서 하나 맛보란다.


몇 잔의 술이 오고 갔는지, 아버지는 벌써 얼굴이 불콰하시다. 주섬거리다 가까이 가니 아버진 나에게 까놓은 곤달걀을 주신다. 징그럽기도 하고 내키지 않아 바라만 보고 있으니 한 말씀하신다.


"사내놈이 뭘 그리 사리냐? 그냥 닭고기라 생각하고 먹어봐!"


유난히 병아리 깃털이 많이 보인다. 깃털을 떼어내고, 안쪽의 모가지 같은 것도 떼어내고.... 도저히 못 먹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못 먹겠어요!"

아버지와 뽀빠이 아저씨는 웃어댔다. 가게문이 열리더니, 옆집 요꼬공장의 뇌신할머니가 얼굴을 찌푸리며 들어오신다. 보나 마나 두통약 '뇌신'을 사러 오신 것이다.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뽀빠이가 곤달걀을 보여주니, 손사래를 치신다. 나에게 두통약을 받아 들고 엄마한테 외상 달아 놓으란다.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옳다구나 싶었다. 저녁도 먹었겠다 호야나 보러 가고 싶었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니, 그놈의 냄새에서 해방되었다. '엄마는 왜 그런 걸 삶아서 팔까?'그런 생각을 하다 호야네 집 앞에 섰다. 희부연 창가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호야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호야! 나왔어! 밥 먹는 거야!"


호야가 손짓을 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라면 냄새가 진동한다. 라면은 우리 가게에서도 비싼 건데..... 무려 30원짜리 라면을 많이도 끓였다.

배가 부른 지 나에게도 젓가락을 권한다.


"라면 어디서 났어! 엄마는 어디 가고?"

"엄마공장 아저씨가 와서 한 박스나 주고 갔다!"


일하시다 다쳐서 병원에 가셨단다. 한동안 병원에 있어야 하니 밥대신 라면으로 주고 간 모양이다.


호야엄마가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학교에서 오다가 본 적이 있다. 너른 들판 한낮의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일하고 계셨다.


나무로 만든 큰 탁자 위, 힘겹게 쇠붙이로 만든 틀위에 삽으로 모래 시멘트를 부어주고, 좌, 우로 탁탁 소리가 나게 흔들면 신기하게 벽돌모양이 나오는 모습을 봤다. 재밌게 생각되어 한참을 봤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왔다.

"요 녀석! 어디 갔나 했더니....., 호야! 이거 받아라!"


엄마는 팥죽과 김치를 호야에게 주었다. 호야는 눈이 휘둥그레져 좋아하는 눈치다.


"네 엄마가 한동안 집에 못 오니까 아줌마네 와서 밥 먹어라!"


그렁그렁한 눈으로 호야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낮에 병원에 가서 자기 엄마를 보고 왔단다.


"너는 라면 그만 뺏어먹고 집에 가 숙제해!!"


호야 엄마는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어, 낡은 집을 부수는 곳에서 일하다 무너지는 담벼락에 깔렸다고 한다. 우리 엄마에게 연락이 와서 한동안 돌봐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라면을 절대 뺐어 먹지 말라고 하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지팥죽을 하셨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양말 선물만 생각했는데 동지는 또 뭔지, 팥죽은 맛있었다.


내일은 눈치 봐서 호야와 썰매를 타야겠다. 산자락을 끼고 내려오는 시냇물이 꽝꽝 얼었다. 낮에 보니 동네형들이 외발썰매를 신나게 타는 걸 봤다.

바로 윗동네 상계동에서 울 동네까지 쭉 썰매로 내려올 수 있다.


생각만 했는데 벌써 흥분이 된다. 방학숙제는 눈에 안 들어오고, 잠도 안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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