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맞은 등이 후끈거렸다. 그래도 엄마가 있으니 좋았다. 망태할배는 갑자기 주섬거리며 봉투 하나 가득 포도를 넣어 엄마에게 건넨다.
"내가 손주아 같아서 일 좀 시켰소! 사내놈이 이 정도 일은 해봐야 하지 않겠소!"
엄마도 누그러져 다소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애가 키만 크지 비실대요... 땀을 비 오듯 흘리길래 탈이날것 같아서..., 제가 좀 흥분했네요."
다시는 포도밭 근처도 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엄마와 집으로 간다. 가게 아이스박스에서 엄마는 막걸리 주전자를 꺼내어 나에게 준다. 망태할배에게 주고 오란다. 부리나케 주전자를 들고 할배에게 가서 드리니,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엄마에게 고맙단 인사를 드리라고 또 심부름을 시킨다.
오는 길, 호야가 궁금해진다. 호야는 이름이 외자다. 성은 김 씨에 이름이 '호'니까, 우리 또래들은 호야라고 불렀다. 큰 느티나무 길가변 아래 호야네 집이 있다. 흙과 벽돌로 지은 집인데 지붕은 짚으로이어 초가집이었다.
나하고 동갑인데도 호야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내가 벌써 3학년인데 호야는 한글도 몰랐다. 집안은 다른 집과 다르게 멍석이 깔려 있었다. 창문은 작아서 집안이 어둠 컴컴했다. 창문을 두들겨 호야를 부른다.
"호야! 뭐 하고 있어. 놀자!!!"
호야가 나왔다. 눈가에 눈물 흔적이 보인다. 순간, 이 녀석도 엄마한테 혼났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호야 엄마는 벽돌 공장에서 일하신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호야엄마는 한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그리고 좀 모자란 사람 같다고 말했었다. 우리 가게에 와서는 이런저런 물건을 고르고는 돈을 손에 꼬깃하게 쥐고 엄마에게 건넨다.
엄마는 물건을 합산하고 돈을 일일이 펴서 계산을 맞추고, 남는 돈은 돌려주곤 하였다. 그리고 딴 데 가서는 그런 식으로 돈 내밀지 말라고 아이 타이르듯 하셨다. 호야아버지는 무슨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어른들께 들었다.
"미꾸리 잡으러 가자!"
호야는 대뜸 논으로 미꾸라지 잡으러 가잔다. 나도 호야하고 노는 게 좋았다. 공부니, 숙제니 하는 것에서 벗어나 산에가 가두리 물에서 수영도 하고, 미꾸라지 잡는 것도 좋았다. 대신 엄마한테 혼날 것은 각오해야 한다.
호야와 가게로 가서 엄마에게 좀 놀다 오겠다고 말하니, 엄마는 하드통에서 아이스 케키 두 개를 꺼내어 나와 호야에게 준다. 호야와 나는 신이 나서 소줏병 하나를 들고, 입에 문 케키를 연신 빨며 논으로 내달렸다.
"거기서부터 몰아!"
호야가 말하자, 나는 발로 물탕을 튀기며 이리저리 미꾸리가 있을 논둑배기 풀숲을 신나게 휘젓는다. 망태할아범한테 혼난 일도, 엄마에게 등짝을 맞은 일도 다 잊혔다. 지금은 호야와 미꾸라지 잡는 순간이 너무 즐겁다.
뚜그락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린다. 말을 타고 오는 소리다.눈을 들어 큰길을 보니, 매일 말을 타는 근처 중학교 주인이라는 사람이다.
나도 말을 타고 싶었다. 흙바람을 일으키며 신나게 달리다, 말위에서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올리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뭐 하냐? 몰아 오라니까!"
호야가 연신 보챈다.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다시 발을 휘저었다. 플라스틱 채바구니를 든 호야는 능숙하게 풀숲을 휘젓더니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바구니를 들어 올린다. 궁금해 달려가니 시커먼 미꾸리가 한가득이다.
"그만 가자! 이 정도면 울엄마가 맛나게 해 줄 거다."
호야네 집으로 신이 나서 갔다. 호야 엄마가 와서 우물물을 길어 무언가를 씻고 있었다.
벌써 저녁때가 되었나 보다. 집에 가야 한다. 늦으면 또 혼난다. 불암산을 넘어온 태양은 이미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