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가졌을 때 포도나무 꿈을 꾸었다. 아름드리 큰 나무에 올라가 포도 열매 두 송이를 따는 꿈이었다. 이상하게 그 꿈은 생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임신이었다. 딸아이를 출산할 때 쯤에 아이의 건강에 관한 걱정을 하였다. 모든 임산부가 조금씩은 출산 전에 느끼는 일종의 불안이었다. 어머니는 태몽에 아이 성별, 건강상태, 아이 장래의 기미가 보인다고 하시면서 꿈이 좋으니 믿으라 하셨다. 아이 태몽에서 본 포도는 포도 단독으로 나에게 다가 온 것이 아니라 뿌리를 깊게 박고 있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내가 획득하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가끔 아이를 보며 그때 태몽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왜 포도가 아이를 은유할까? 옛 그림에서 그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옛 그림의 상징을 보면 포도는 알이 맺힌 모양에서 자식을 은유하였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민화박물관인 가회민화 박물관 소장인 <포도도>를 보면 포도나무에 맺힌 포도송이, 고양이, 쥐가 보인다. 포도 덩굴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있고 중앙에는 포도 열매를 파 먹고 있는 쥐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다. 고양이의 웅크린 모습이 쥐를 가만히 두지 않을 기세이다. 제목은 <포도도>인데 중앙에 있는 커다란 고양이가 주인공인지 포도를 파먹는 두 마리 쥐가 주인공인지, 아니면 덩굴을 이루고 있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주연인지 헷갈린다. 여기서 옛 사람들이 포도에서 자식을 연상하고 포도꿈을 꾸면 태몽으로 해석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자연이 사람들의 생활과 분리되지 않았을 때, 즉 우리가 근대화를 이루기 이전에 우리의 삶은 자연과 함께 순환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참외밭에서 참외를 먹고 저녁에 밭에서 똥을 누면 그 분변 속에서 참외씨가 들어있고, 그 참외씨에서 다시 참외가 열리는 식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연의 동식물들과 삶을 분리 시키지 않고 살아왔다. 당연히 자신이 먹은 참외에서 소화된 분변에서 또 참외가 나오니, 자연과 인간이 순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집단 무의식처럼 꿈에서 탐스러운 과실이 보이면 그것에서 자식을 보았다. 꽃이 생식기라면, 열매는 자손이다. 그래서 씨가 많은 석류나 수박 또 알알이 박힌 포도 등은 자손을 상징하고, 오이는 남자아이의 성기를 닮아 아들을 상징하였다. 화조화는 꽃과 털이 달린 짐승도 많이 그려졌지만, 석류, 수박, 오이, 포도 등 먹을 수 있는 것들도 많이 그려졌다. 식탁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째 그려졌다. 동양에서는 꽃이나 열매를 그린다면 그것이 뿌리 내리고 있는 흙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식한다. 즉, 그것이 자연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간도 자연과 둘이 아니라고 인식하였다. 자연에서 나온, 즉, 물에서 나온 물고기, 흙에서 나온 과실, 땅을 밟고 있는 육식동물을 먹고 사는 최상위포식자인 인간이지만, 이들의 상급자이거나, 지배자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과실이나 동물에서 인간의 생명의 잉태의 기미를 읽어내는 것이다. 동시대미술에서 또 한번 포도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포도의 표면을 분이 나도록 표현한 그림에서 였다. 뽀얗게 분이 난 포도는 먹음직 스럽지만 어딘지 볼 거리가 옛 그림보다 풍부해 보이진 않는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고해상도 화질에 둘러싸여 성장한 극사실주의 2세대는 유리 용기와 사탕(안성하), 사과(윤병락), 와인 잔(유용상), 붓(이정웅)처럼 평범한 사물을 물신화시키는 능력을 지녔고, 그 점에서 17세기 정물화와 연결된다고 말한다. 극사실주의에서 과실을 보면 표면에 치중한다. 즉 과실의 껍질을 밀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차이가 미묘할 정도로 표면의 감각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극사실회화에서 분이 나는 포도를 보고 여름이 전해주는 기억과 향기를 느끼기는 어려울 거 같다. 극사실주의는 카메라를 많이 접한 세대가 그린 그림이다. 즉, 온전한 자연에서 과실을 접하긴 어려웠던 세대이다. 광고 등 미디어가 표면의 감각에 집중하던 것을 같이 공유하던 세대가 미술에서도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을 학습으로 배우며 미디어 채널에서 접한 세대가 그리게 될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포도도> 여덟 폭 병풍 가운데 여섯 폭, 종이에 수묵, 각 97*28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안성하 <Untitled>, 130*194츠, oil on canvas, 2005
윤병락, <Autumn's Fragrance>, 2017, 120*236cm, 한지에 유채, 이미지 출처-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반이정 저 p. 380.